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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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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씨고선옥처(유인연주현씨열행비)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현씨(玄氏), 고선옥(高善玉) 처

소재지 : 제주시 한경면 산양리.

규격(㎝) : 높이 96 너비 38.5 두께 18

건립연도 : 1963년 4월

비문(전면) : 孺人延州玄氏烈行碑

비문(후면) : 嗚乎 家國之隆替 未有不端 倪於坤儀矣 我慈孺人玄氏 延州人仁伯二女 適我先考諱善玉 諱達之之長男 事夫子如賓 奉舅姑以孝 先考不幸早世 孺人芳年守節 治家井井 繼其已絶之世 興其將覆之家 高氏宗廟 賴以有傳節與功 兼鄕邑推重 顧我不肖未能立 揚以顯休懿 罪何可言 但恐桑海多變 湮沒美蹟 玆立片石于部里 以圖不朽 嗚乎

비문(우측면) : 西紀一九六三年癸卯四月日 孫子平潤謹立

비문(좌측면) : 손자, 사위, 외손의 이름 음각.

비문(후면) 해석 : 아, 집안이나 나라의 성쇠는 대지에서 시작되고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 어머니 유인 현씨는 본관이 연주인 현인백(玄仁伯)의 둘째 딸로 고달지(高達之)의 장남인 우리 아버지 고선옥(高善玉)에게 시집왔다. 남편 섬기기를 손님과 같이 하고 시부모 받들기를 효도로써 하였다. 아버지가 불행하게 일찍 세상을 떠나니 꽃다운 젊은 나이에 수절하며 집안 일을 처리함에 질서정연하여 이미 끊어진 世代를 잇고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고씨의 종묘에서 마침 절개와 공로를 전하고 있으므로 마을에서도 높이 받들어 귀중하게 여기었다. 돌아보건대, 우리는 불초하여 세울 수가 없으나 드러내어 아름다운 행실을 선양함에 어찌 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세상 일이 변화가 많아서 아름다운 자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 염려되어 이에 조그만 비석을 마을에 세워 영원하길 도모하고자 한다. 아,

비문(우측면) 해석 : 서기 1963년 계묘 4월 일 손자 평윤 삼가 세움.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4
첨부파일
현씨고선옥처(유인연주현씨열행비) 제주시 한경면 산양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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