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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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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녀 홍랑비(홍의녀지묘)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홍랑(洪娘, 洪允愛)

소재지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규격(cm) : 높이 93 너비 43.5 두께 13

건립연도 : 1940년 4월 15일

비문(전면) : 洪義女之墓

비문(후면) : 洪義女鄕吏處勳女 正宗丁酉 余以罪置耽羅 義女時出入余謫 辛丑壬人欲搆余以義女作餌殺 機墮突血肉狼藉 義女曰 公之生在我一死 旣不服又雉懸而殉 閏五之十五日也 後三十一年 余蒙 恩以防禦來鎭 玆方象設墓道 系以詩曰 瘞玉埋香奄幾年 誰將爾怨訴蒼天 黃泉路邃歸何賴 碧血藏深死亦緣 千古芳名蘅荰烈 一門高節弟兄賢 烏頭雙闕今難作 靑草應生馬鬣前 濟州牧使兼全羅道防禦使趙貞喆書

비문(우측면) : 昭和十五年庚辰四月十五日 兄弟移墓改合葬于今德境木啄旨庚作 外孫通德郞朴奎八 祔左 住郭支

비문(후면) 해석 : 홍의녀는 향리 처훈(處勳)의 딸이다. 정조 정유년(1777, 정조 1)에 내가 죄에 연루되어 탐라에 안치되었다. 의녀가 때때로 나의 적거에 출입하였는데 신축년(1781, 정조 5) 간사한 사람이 의녀를 미끼로 하여 나를 얽어 죽이려고 했는데 그런 기미가 없자 돌연 피와 살이 낭자하게 되었다. 의녀가 말하기를 ‘공(公)의 삶은 나의 죽음에 있습니다.’하고는 결국 불복하고, 절개를 지켜 죽으니 윤5월 15일이었다. 그 후 31년 만에 내가 임금의 은혜를 입고 방어사로 제주에 와서 네모진 묘역을 만들고 이어서 시를 짓기를, 옥 같던 그대 모습 묻힌 지 몇 해던가/ 누가 그대의 원한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으리/ 황천길은 먼데 누굴 의지해 돌아갔는가/ 정의로운 피 깊이 간직하고 죽었어도 인연은 이어졌네/ 천고에 높은 이름 형제의 곧은 지조/ 한 가문에 높은 절개 모두 어진 형제였네/ 검은 머리 두 무덤 이제는 일어나지 못하고/ 푸른 풀만 말갈기 앞에 돋아나겠구나. 제주목사 겸 전라도방어사 조정철 씀.

비문(우측면) 해석 : 소화 15년 경진(1940) 4월 15일 (홍랑) 형제의 묘를 옮겨 금덕리 지경 목탁지 서남방에 합장하였다. 외손 통덕랑 박규팔의 왼쪽에 모셨다. (박규팔은) 곽지에 거주했다.

문헌(수록) : 증보탐라지(담수계)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0
첨부파일
충의5 의녀 홍랑비(홍의녀지묘)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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