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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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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이필완비(충효가선대부이공필완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이필완(李弼完)

소재지 :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규격(cm) : 높이 95 너비 54.5 두께 20

정려(복호)연도 : 복호(1781, 정조5), 정려(1862, 철종 13)

건립연도 : 1965년 3월.

비문(전면) : 忠孝嘉善大夫李公弼完之閭

비문(후면) : 夫忠孝人倫之大者也 公以遺腹子 事母至孝 爲父追喪 祭奠必誠 其母送終時 居庐母墓 至誠致祭 母生時 不食牛肉 死後亦以雉鷄屬祭之 一日墓祭 求雉不得 適有鷹而搏雉於墓前 具膳而祭 丙申大喪 年踰八耊 六月上京 負土陵役 勇力盡忠 恩重几杖 名振耽羅 先祖追贈受官 其忠孝之卓異 於斯可見 故哲宗朝特命旌焉 同治元年正月 日 一九六五年三月 日 重竪

비문(후면) 해석 : 충효는 인륜의 대본이다. 공은 유복자로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었고 아버지를 위해 추후로 상복을 입었는데, 제사에 올리는 제물에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어머니 묘 곁에 여막을 지어 살면서 지성으로 제사를 지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에 쇠고기를 먹지 아니했으므로 돌아가신 뒤에도 꿩이나 닭으로 제사를 지냈다. 하루는 묘제에 쓸 꿩을 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매가 묘 앞에서 꿩을 치어 떨어뜨리므로 찬을 갖추어서 제사 지냈다. 병신년(1776, 영조 52) 대상(영조 국상)에는 나이 80이 넘었는데도 6월에 상경하여 능역의 흙짐을 지고 뛰어난 역량으로 충성을 다하였으므로 장(杖)의 은전을 내려 탐라의 이름을 떨쳤으며 선조들에게도 추증하여 벼슬을 내렸으니, 그 충효의 탁이함을 이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철종조에 특별히 명하여 정려가 내렸는데, 동치 원년(1862, 철종 13) 정월이었다. (지금의 비석은) 1965년 3월에 다시 세웠다.

문헌(수록) : 효열록(김영락), 탐라지초본(이원조), 탐라기년(김석익), 증보탐라지(담수계).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4
첨부파일
효1-2 효자 이필완비(충효가선대부이공필완지려)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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