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섬 문화로 본 제주 춤의 정체성-<탐라순력도> 와 <입춘굿 탈놀이> 를 중심으로-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본고는 제주도의 춤 하위문화를 찾아내고, 그 요소를 중심으로 이형상(숙종28년)의 <탐라순력도>와 이후 이원조(헌종7)의 『탐라록(耽羅錄)』에 나타난 입춘굿 탈놀이를 문화사적으로 살펴 보왔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도 그 자연을 끝없이 숭배하고, 기도해야 하는 자연환경적 요소로 인해 무수한 신을 섬기고 있으며, 이형상의 <탐라순력도>『건포배은(巾浦排恩)』(1702년)․일본의 제주수탈 제도화(1910년대)․4․3사건(1948년)의 역사적 요소들로 제주 춤 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중 <탐라순력도>『정의양로(庭儀養老)』․『정방탐승(正方探勝)』․『제주양로(濟州養老)』(1702년)의 무인(舞人)․무인(舞人)의 형상(形象) 및 의상․무구(舞具) 의 구성을 통해 제주의 무수한 신당을 혁파하고, 중앙 유교문화의 유입과 재현을 위해 노력한 조선시대 성리학자 이형상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제주 도사 신광수 『탐라록(耽羅錄)』(1764년)과 제주목사 이원조『탐라록(耽羅錄)』(1841년)에는 이형상의 정치적 흔적은 사라지고, 그들의 문화 속에 토속신앙만이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이원조『탐라록(耽羅錄)』(1841년)의 ‘입춘굿 탈놀이’ 에 대한 기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주도민들의 토속신앙을 대신할 수 없고 그러한 신앙심은 춤으로 극대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입춘굿탈놀이>는 험난한 자연환경에 순응하기 위한 기도의 집단춤이 주가 되고 있으며, 고달픈 삶을 영위해야 했던 제주여성들은 노동을 놀이처럼, 놀이를 노동처럼 여기며 대동의 가락과 춤으로 삶의 시름을 신에게 비렴하였다. 결국 제주의 춤 문화 정체성은 두레형식의 노동을 놀이로 발전시킨 무아(無我)의 강인한 여성성과 정치적 부침(浮沈)을 거듭하면서도 절대신을 향한 주술성으로 대표된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2
저자명
김운미 외
소장처
KCI
조회
38
첨부파일
섬 문화로 본 제주 춤의 정체성-탐라순력도와 입춘굿 탈놀이를 중심으로.pdf

이 자료의 저작권은 원저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사용 시 원저작권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