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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 쇠스랑[鐵搭]을 통해본 明淸시대 江南의 水田농업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王禎農書』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鐵搭은 한반도에서 2세기 때부터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출토되었던 쇠스랑으로, 한반도를 통해 唐代 이전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한반도 남부지역은 신석기 중기부터 농경을 하였으며, 한반도의 쇠스랑은 4~5세기에 보급이 확대되면서 다목적 농구로 사용되었다. 당시 쇠스랑의 제작기법은 철정 하나를 단조하여 刃部와 銎部를 제작했으며, 銎부분은 鐵板을 펴서말아 圓筒形의 木柄口를 만들었다. 이 방식은 원대 이후 중국의 철탑과는 제작법이 전혀 다르며, 당시 한반도의 쇠스랑의 제작기법과 형태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中國 江南지역의 철탑은 水田의 대표적인 深耕을 위한 농구였지만, 한반도의 쇠스랑은 1세기부터 旱田과 堆肥생산에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明淸시대에서는 철탑이 牛犁를 대신하여 사용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무상유벽리가 존재하여 쇠스랑과 짝을 이루어 노동한 것이 특징이다. 또 쇠스랑이 강남지역에 널리 보급된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명청시대 사회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가구당 보유토지면적은 줄고, 商業作物재배와 傭工의 기회가 많아져 牛犁를 사용하지 못해 손실된 수입을 보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며, 게다가 전통적인 相助노동을 통해 牛犁의 노동생산성을 보완했으며, 水田의 토질도 粘土性이 강하여 江東犁의 도입이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명청시대 강남농업에서 쇠스랑이 多肥深耕의 중심 농구로 잡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쇠스랑이 근대화 이후 기계화의 도입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농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농업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아쉬운 일이다. 필자는 이 논고를 빌어 유기농업의 부활과 쇠스랑이 동아시아 공통의 農業文化遺産으로 다시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1
저자명
최덕경
소장처
KCI
조회
21
첨부파일
韓半島 쇠스랑[鐵搭]을 통해본 明淸시대 江南의 水田농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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