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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초(明初) 유배지로서 탐라 -운남 몽골인의 타향살이 역정을 중심으로-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제주도연구 제48권

  원명 교체 이후 20여년은 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기존 질서가 깨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북원-명-고려의 상호 관계 및 그 변화의 과정은 많은 기복을 거치면서 매우 복잡 다변하게 이어져간다. 13세기 후기와 14세기 전기, 탐라는 대량의 외부에서 온 이민들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원나라 왕실의 제왕이거나, 정치관료 혹은 체포된 도적떼들이었다. 홍무15년(1382), 22년(1389), 그리고 25년(1392), 탐라는 세 차례 새로운 몽골 이민들을 차례로 맞이하게 된다. 이들은 명 황제에 의해 머나먼 운남에서 유배온 자들이었다. 명나라가 몽골의 제왕과 관련자들을 유배 보내면서 탐라를 선택했다는 것은 명나라와 고려의 관계가 이미 명확해졌으며, 명왕조가 동남아 대륙에서 패권적 지위를 확보했다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명나라는 원을 대신해 중국을 통치하면서도, 여전히 몽골 제왕 및 그 관련자들을 탐라로 유배 보내었다는 점은 또 다른 측면에서 원명(元明) 두 시대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7
저자명
T.테무르
소장처
제주학회
조회
33
첨부파일
명초 유배지로서 탐라-운남 몽골인의 타향살이 역정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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