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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유배교육사 연구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본 연구는 조선시대 제주교육의 역사적 특징과 성격을 유배를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통상적으로 써왔던 “유배인의 교학활동(敎學活動)”이라는 표현 대신에 ‘제주유배교육(濟州流配敎育)’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제주유배교육은 조선시대, 제주라는 시대·지역적 상황과 유배라는 형벌이 만들어낸 제주의 독특한 교육문화이다. 제주유배교육을 통해 조선시대 제주교육의 역사는 한층 깊어지고 더욱 다양해졌다. 조선시대 제주유배 교육의 역사는 크게 전기와, 중기, 후기, 말기 등 4시기로 대별되었다. 각 시기 마다 제주유배인의 현황과 그들 가운데 특별히 제주교육에 영향을 끼쳤던 유배인들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제주유배교육의 의미와 그것이 조선시대 제주교육의 역사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규명하였다. 제주교육의 역사 가운데 조선전기는 태조조(太祖朝 1392)에서 인종조(仁宗朝;1545) 기간으로 이른바 ‘제주유배교육의 태동기(胎動期)’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왕조의 중앙집권체제가 성리학적 교육이데올로기에 의해 강력하게 구축되던 시기이다. 특히 조선전기는 체제의 제도적 정비라는 차원에서 국가교육의 형식 확충이 시급히 요망되었으며 그러한 문교정책적(文敎政策的) 필요성에 부응하여 제주도에도 교육의 형식적 기틀이 갖추어지게 되던 때였다. 이 시기에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 이른바 사림파와 훈구파의 갈등으로 빚어진 4대 사화(士禍)로 인해 여러 유배인들이 제주도로 보내지게 된다. 이들 가운데 특히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교육이데올로기를 신봉했던 사림파들이 제주도에 유배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주교육은 일찍부터 사림의 교육사상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 가운데 ‘충암(沖庵) 김정(金淨)’과 ‘이세번(李世蕃)’은 당대 최고의 교육자였던 조광조(趙光祖)와 교우(交友) 또는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던 사람으로서 제주교육에 남다른 사상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선중기는 명종조(明宗朝 1546)에서 숙종조(肅宗朝 1720)의 시기로써 ‘제주유배교육의 성숙기(成熟期)’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당쟁으로 관료 상호간의 권력암투가 심대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이 발전, 심화되던 때였다. 제주도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중기는 출륙억제(出陸抑制)라는 제도적인 금압정책(禁壓政策)이 강요됨으로써 대외적인 교육진출의 길이 거의 봉쇄된 상황에서 교육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당쟁으로 인해 빈번해진 유배인과 제주인들과의 교육관계는 어느 정도 그러한 교육적 위축을 보상해 줄 수 있었는데 제주도 귤림서원(橘林書院)의 건립과 오현배향(五賢配享)은 보상의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3
저자명
강동호
소장처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
조회
43
첨부파일
조선시대 제주유배교육사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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