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제주지역 扁額懸板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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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제주지역에 유존하는 조선시대 양식의 주요한 편액현판 11점에 대해 분석하였다.
편액서를 쓴 인물의 신분유형을 보면, 제주출신과 유배객 그리고 목민관 및 중앙관원으로 나눌 수 있다. 제주출신의 글씨로는 고득종(1388-1452)의 <홍화각>, 정상명(?-?)의 정의향교 <명륜당>, 김용징(1809-1890)의 제주향교 <계성사>가 있고, 유배객의 글씨는 김정희의 대정향교 <의문당>, 제주목 <연희각>, <은광연세>가 있고, 목민관의 글씨로는 김영수(1716-1786)의 <탐라형승>과 박선양(?-?)의 <호남제일정>이 있으며, 제주와 특별한 연고가 없는 중앙관원의 편액서로 이산해(1539- 1609)의 <관덕정>과 이종우(1801-?)의 제주향교 <계성사>가 전하고 있다.
제주지역에는 공공건물 이외의 조선시대 편액현판이 아직까지 전해진 예는 거의 없다. 현판양식의 변화는 후기로 갈수록 테두리목을 덧대고 현판 주변부에 문양장식이 가미되긴 하지만 여전히 단순하고 검소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반도의 편액현판의 경우, 장엄과 장식을 통해서 위세를 드러내는 궁중이나 사찰 또는 사대부가의 유물로 상당부분 차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제주의 경우는 아마도 관가나 일부 규모가 큰 사찰을 제외하면 대부분 초가집이었다는 점과 반도와는 달리 누정문화가 거의 없었던 지역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왕조교체기 및 端宗의 폐위를 계기로 자발적으로 입도한 제주지역의 문화지배층이라고 할 만한 선비들의 은둔자적 삶의 태도가 적잖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