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翁仲石: 돌하르방에 대한 고찰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탐라문화 33호

 

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독특한 돌문화 중 제주의 대표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다. 제주의 삼읍성 성문 앞에 세워져 있던 석상으로 문헌에는 ‘옹중석(翁仲石)’으로 기록되어 있다. ‘옹중’은 진시황때의 장수인 완옹중(阮翁仲)을 가리키며 그의 용맹스러움을 기려 성문 앞이나 궁궐 앞에 세워지게 되는데 이후 이러한 석상들을 모두 옹중석이라 부르게 된다.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서도 길가에 세워지는 석상, 무덤 앞에 세워지는 석상 등을 모두 옹중석이라 부르고 있어서 제주의 성문 앞에 세워졌던 옹중석은 지금의 돌하르방임을 알 수 있다.

돌하르방의 기원에 대해서는 몽고에서 기원했다는 북방전래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기원했다는 남방전래설 그리고 제주도의 자생적인 조형이라는 점을 일부 포함한 육지전래설 등이 있다. 비록 제주도가 섬으로, 본토와는 멀리 떨어져있지만 조선시대 중앙집권체제 하의 한 지방으로서, 어떠한 문화의 형성에는 많은 영향관계가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북방전래설이나 남방전래설을 논하기에 앞서 육지부에 유사한 형태로 남아있는 장승ㆍ벅수와의 친연성과 영향관계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 삼읍성의 돌하르방은 벙거지형태의 모자, 하반신이 생략된 형태의 묘사, 손의 표현 등에서 조형적인 공통점을 보이지만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삼읍성 각각의 독특함을 보인다. 삼읍성 돌하르방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벙거지형태의 모자나 부분적으로 표현된 옷착용 모습에서 당시 무인복식 중 모자인 전립(氈笠)과 의복인 동다리, 전복(戰服)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돌하르방의 주 기능이 성문 앞을 지키는 수문장, 즉 무인상이라는 점과도 일맥상통 한다.

현재 제주 삼읍성의 돌하르방은 복원 정비된 정의성 돌하르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래의 자리에서 이동되어 있다. 다행히 이동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나 증언을 통해 각지로 흩어져 있는 돌하르방의 원위치를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나 이러한 원상을 찾는 작업은 돌하르방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할 과제이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08
저자명
김정선
소장처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조회
55
첨부파일
옹중석 돌하르방에 대한 고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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