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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풍토록>의 텍스트 비평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충암이 제주에서 제작한 한시와 <제주풍토록>은 익명성과 모호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기묘사림에 대한 훈구파의 감시와 압박 때문에 대상 인물의 흔적을 애초에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풍토록> 원본이 행초로 적혔거니와 결락된 부분이 많은 탓에 탈초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오류가 발생했다. <풍토록>은 제주 풍토를 기록한 것으로 충암이 외질에게 답장 형식으로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으나 일단은 상대방이 외질이 아닐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충암은 사사되기 직전인 1521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풍토록>을 저술했다. <풍토록>을 찬술하며 󰡔본초강목󰡕과 󰡔동국여지승람󰡕 등을 활용했다. 충암에게 제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인물은 고근손, 문세걸, 방순현, 여러 익명의 제주 백성들이다. 정온, 허목, 김성구, 이해조, 남구명 등의 저술과 󰡔탐라지󰡕,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서 <풍토록>을 적극 인용하고 있다. <풍토록>은 후대 문인들에게 폭넓게 읽혔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답장의 형태로 제주 풍토를 기술하던 방식이 후대 문인들에게 모의되기도 했다. 김성구의 <남천록>과 이해조의 한시 주석, 이규경의 기사는 <풍토록> 텍스트의 모호한 표현과 오류를 수정하는 데 유익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이규경은 <풍토록>을 활용하되 불확실한 부분을 보충하고 새로운 정보까지 추가하면서 실학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훗날 제주에서 기록되거나 제주를 소재로 찬술된 각종 시문에서 <풍토록>을 자주 인용했고 문학 소재로서 활용했으며 충암이 기술한 제주 풍토의 특징 및 개인적 견해는 후대 잡록류나 읍지류에서 공론처럼 정리되곤 했다. 현전하는 <풍토록> 텍스트에는 여러 층위의 오류가 내재되어 있다. 중간본 간행 시, 초간본의 오류나 어색한 표현을 상당부분 수정하기도 했으나, 초간본의 합당한 표현이 엉뚱하게 판각된 사례도 보인다. 그리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입력본 DB를 제작할 때 문집의 글자를 오독한 경우도 눈에 띈다. 이밖에도 불완전한 표현과 글자들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애초에 행초로 적힌 편지가 일부 손상되었고 훗날 그것을 탈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여겨진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9
저자명
김덕수
소장처
KCI
조회
69
첨부파일
제주풍토록의 텍스트 비평.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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