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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述 資料를 活用한 歷史 授業 方案: 濟州 4·3 事件을 中心으로

분야별정보 > 역사 > 4.3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세기 랑케로부터 시작된 實證主義 歷史學은 한동안 역사학의 硏究 方法論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文獻 史料의 科學的 檢證은 역사학의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었으며, 文獻으로 기록되어진 史料만이 역사 연구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信念은 역사 연구가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믿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實證的 역사학은 그 限界와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타 학문들과의 交流를 摸索하기 시작했다.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 특정 엘리트 계층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역사학은 사회과학 계열의 학문들과 融合하며 다양한 연구 방법들을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특히 人類學과의 遭遇는 고대로부터 命脈을 유지한 구술사를 역사학의 한 분야로 재등장시켰다. 구술 자료를 활용한 역사 서술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으며 그 동안 看過되었던 수많은 목소리들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契機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구술사 연구는 서양의 구술사 이론들을 受容하면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과거 政治的 입장에서 抑壓받았던 사회 문제를 중심으로 대부분 眞相 糾明의 형태를 띠고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바로 국가적 차원에서 특별법의 制定과 眞相 調査가 이루어진 제주 4·3 사건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제주 4·3 사건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한국 전쟁 다음으로 그 피해의 정도가 컸던 悲劇이었다는 점을 排除한다 하더라도, 남한 내부의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 싼 의견 대립으로 인한 내적 葛藤이 원인이었다는 점, 葛藤의 解消가 武力으로 인한 强硬 鎭壓의 형태를 띠었다는 점, 이러한 과정에서 人權은 철저하게 蹂躪되고 많은 일반인들이 虐殺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이 隱蔽되어 오랜 시간동안 眞相 糾明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제주 4·3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浮刻시키며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중요성을 가진 제주 4·3 사건을 학생들은 어떻게 학습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 국사 교과서와 근·현대사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는 제주 4·3 사건의 내용을 分析하였으며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제주 4·3 사건의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分析된 결과를 통해 학생들이 교과서로 학습하는 제주 4·3 사건은 그 내용이 불충분함을 알 수 있었다. 檢·認定 교과서로 분류된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는 각 출판사마다 제주 4·3 사건의 내용을 달리 하고 있었으며 사건의 발생 자체가 서술되지 않은 교과서도 존재했다. 이러한 점들은 교과서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 수업이 역사적 사실의 확인이나 구체적 내용을 이해하는데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 수업의 代案的 방법으로 구술 자료를 활용한 역사 수업을 제시하였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4.3
생산연도
2010
저자명
박영기
소장처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도서관
조회
13
첨부파일
口述 資料를 活用한 歷史 授業 方案-濟州 4.3 事件을 中心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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