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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항쟁 연구: 통일정부 수립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중심으로

분야별정보 > 역사 > 4.3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본 연구는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주체의 확립에 우선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남북한 분단과 지역사회 갈등을 해방정국 시기의 제주도 4·3항쟁이라는 상황하에서 서술하려 한다. 제주 4·3항쟁은 제주도의 역사적 민중항쟁 속에 흐르는 반외세, 반정부, 자치 독립주의가 남북분단이라는 상황하에서 남로당의 단독선거 반대투쟁을 매개로 1948년 4월 3일 발발한 통일정부수립운동이다. 4·3항쟁의 통일정부수립 운동은 직접적으로 미소의 이데올로기 세계질서 대립과정의 부산물인 분단에 의해 야기된 것이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4·3항쟁의 통일정부수립운동의 과정 속에서는 정부의 탄압과 제주도민의 반정부적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다. 5·10단선이라는 남북분단의 위기하에서, 제주도당은 5·10단선을 기필코 저지해야 한다는 인식과 미군정, 우익의 탄압으로부터 당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와 지는 상황 속에서 당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자위적인 측면이 맞물리면서 4·3무장투쟁을 결정하였다. 제주도당의 이러한 결정은 3·1절 기념시위와 3·10총파업을 기점으로 탄압을 가중시켰던 미군정과 중앙과 지방의 갈등구조를 이용한 보이는 서북 청년단의 탄압에 투쟁하려는 일반 제주도민의 상황과 결합하면서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따라서 4·3투쟁의 측면은 제주도당의 독자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단선저지 라는 정치적인 측면과, 제주도민의 투쟁방향에 따른 미군정·경찰·서북 청년단의 탄압에의 투쟁이라는 측면이 혼재되어 통일정부 수립론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4·3항쟁에서의 통일정부론에서는 단선저지와 미군정·경찰·서북 청년단의 탄압으로 인해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 제주 4·3 항쟁에서의 통일정부 수립론은 3시기로 전개된다. 제1시기는 단선이 시작되기 전까지인 1948.4·3-8월말까지의 시기로, 제주민중이 과거의 역사적 저항운동의 경험, 해방이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 운동주체(남로당) 역량에 대한 낙관적 인식과 객관적 정세의 주관적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상승 작용하여, 당중앙과 분리되어 자주적인 남로당과 연대해 민중항쟁으로 발전·전개된 시기이다. 이 시기는 보복적 차원의 성격이 강했으며, 단선반대를 통일정부 지지로 인식했다. 제2시기는 1948.9월-1949.5월 15일로, 비록 제주도에서는 선거를 파탄·저지 시켰지만 중앙에서는 선거가 치러지고 단독정부 수립이 기정 사실화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남로당이 당 중앙과 긴밀히 연계되면서 단선반대는 곧 남한 정부에 대한 반대이며 이들의 통일정부론은 인민공화국의 지지였다. 제3시기는 1949.5.15∼1953.6월말로, 단독정부 수립 후 이제는 통일정부 수립이 아닌 본격적인 북한지지의 성격을 지니며 이로 인한 미군정과 남한정부의 탄압으로 민중에게 항쟁의 이상은 지워지고 수난의 현실이 다가오는 시기이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4.3
생산연도
1999
저자명
한미영
소장처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조회
35
첨부파일
제주 4.3항쟁 연구-통일정부수립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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