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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제주교육에 미친 영향: 교육시설의 피해를 중심으로

분야별정보 > 역사 > 4.3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4·3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그 발생 배경과 양민학살문제 등이 중심을 이루어, 문화·예술·가정·여성문제 등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교육분야의 피해 실태도 조사된 바 없어, 본 연구에서는 광복 이후 제주지역에서 꽃핀 학교설립운동과 제주 4·3에서의 교육시설의 피해를 중심으로 4·3이 제주교육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지역의 교사들은 광복 이후 인민위원회 등에 활발히 참여했고, 4·3 발발 직전 김달삼, 이덕구 등 교사출신들이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좌익계 교사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자치의식과 민족의식을 강조하면서 학생과 주민들간에 공동체적 분위기를 형성시켰다. 이러한 좌익 성향으로 4·3의 주도 인물에 교사출신이 많았고, 그 제자들도 입산해 무장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제주의 교사와 학생들은 사상적으로 의심받아 큰 희생을 치루었고, 교육시설도 피해를 입게 되었다. 둘째, 광복 이후 마을공동체의 합의를 모아 학교설립운동이 전도적으로 일어났다. 초등학교는 광복 당시 52개교에서 1948년에 95개교로 183%의 성장(전국 성장률 121%)을, 중학교도 광복 전 2개교에서 1948년에 16개교로 증가(전국 증가율 229%)했다. 미군정기에 설립된 초등학교 43개교의 77%인 33개교가 1946년에 세워졌다. 1946년은 제주에서 인민위원회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대정, 한림, 조천, 애월면지역의 인민위원회는 학교설립과 운영에 관여했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셋째, 지금까지 4·3으로 인한 교육시설의 피해 실태가 제대로 조사된 바 없어, 필자 나름대로 각종 문헌과 증언채록을 통해 소실 42, 건물해체 6(초등), 폐교 2개교(중등) 등 50개교가 피해를 입은 사실을 확인했다. 소실된 42개교는 초등 39, 중등 3개교로, 초등학교는 전체 95개교의 41%인 39개교, 중학교는 16개교의 19%인 3개교가 소실되었으며, 이 중 무장대에 의해 60%인 25개교, 토벌대에 의해 40%인 17개교가 손실을 입었다. 건물이 해체된 6개교와 폐교된 2개교도 당국에 의해 교육적 중단이 나타난 것이므로, 토벌로 입은 피해는 모두 25개교였다. 따라서 무장대에 의해 25개교가 소실되고, 토벌대에 의해 25개교가 손실을 입게 되어 제주교육의 기반은 무장대와 토벌대 양쪽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도민들은 4·3의 혼란 속에서 교육시설의 복구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학교의 소실은 마을공동체의 파괴였으며, 그 복구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자 제주 4·3을 극복해 나간 교육적 노력이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4.3
생산연도
2001
저자명
윤석찬
소장처
용인대학교 도서관
조회
64
첨부파일
4.3이 제주교육에 미친 영향 - 교육시설의 피해를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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