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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기념의례의 형성과 구조

분야별정보 > 역사 > 4.3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격동적인 한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제주4·3사건에 대한 평가와 담론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담론의 유포는 주로 기념의례들을 통해 이뤄졌는데, 기념의례는 집단의 경험이나 평가를 특정한 시공간적 이미지에 배치t시킴으로써 그 경험이나 평가를 안정시키고 명료하게 만들었기에 4·3기념의례들의 담론적 효과는 매우 컸다. 이로 인해 다양한 주체들이 오랫동안 기념의례들을 통해 담론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에 연구는 많지 않다. 특히 실제 구체적인 의례의 텍스트들이 담론이나 사건을 부상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의 형성과정과 형식 및 구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의 문제인식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4·3사건에 대한 담론들은 시기에 따라 어떤 기념의례들로 생산되어 나타났는가? 그리고 각 기념의례들은 상호 어떤 역학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가? 둘째 그 과정에서 담론이나 사건을 부상시키는 각 기념의례의 텍스트들은 어떤 형식과 구조로 이뤄져 있는가? 셋째 이러한 기념의례의 형성과정과 텍스트에 관여한 여러 사회학적 변수들은 무엇인가? 이에 따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첫째 4·3사건과 관련된 기념의례들은 크게 위령제, 추모제, 굿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념의례의 형식들은 주체들에 따라 뚜렷한 선호 의식이 있었는데, 국가는 위령제를, 민주화 집단은 추모제와 굿을, 유족들은 위령제와 추모제, 굿 등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들 주체들은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각 기념의례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공산폭동, 민중항쟁, 양민학살, 국가폭력, 평화 등의 담론을 전개해왔는데, 이런 상황은 각 주체들의 역학 관계 속에서 각 기념의례들을 배치되도록 하였다. 둘째 이러한 역학관계는 각 기념의례들의 텍스트 구성에 영향을 미쳤는데, 주로 기념의례의 대상, 기념의례의 시공간, 기념의례의 형식들이 주체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달리 나타났다. 주체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기념의례들의 양상은 크게 세 시기를 통해 변화를 보였다. 1차 시기는 국가의 군경 및 우익희생자만을 기념대상으로 삼는 충혼위령제와 이들에게 희생당한 희생자 유족들의 굿과 같은 기념의례가 잠정적인 갈등 상황에 놓여 있을 때였다. 이 시기 공산폭동이 사회 주도 담론이었다. 2차 시기는 새로운 주체인 민주화 집단이 민중항쟁론을 주장하고 국가와는 다른 민간인 및 무장대 희생자들을 공개적인 기념대상으로 삼는 추모제를 개최하면서 기념의례를 둘러싼 갈등들이 표면화 된 시기였다. 그리고 갈등 끝에 주체들의 합의에 의해 새로운 공동 의례가 모색되어 합동위령제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 양민학살론이 사회 주도 담론이 되었다. 3차 시기는 국가가 간부급 무장대 희생자만을 배제하고 나머지 희생자들을 모두 국가 기념의례의 대상으로 삼는 시기로, 기존 충혼위령제 외에 합동위령제를 수용함으로써 국가의 두 가지 전략을 보여주는 시기였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4.3
생산연도
2008
저자명
현혜경
소장처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조회
32
첨부파일
제주4.3사건 기념의례의 형성과 구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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