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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제주유배 한시의 교육적 의미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제주도연구 제44권

송시열은 송자라 일컬어질 정도로 조선시대 후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숙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83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왔다. 제주도는 극변인데다 조선시대에는 출륙금지령으로 인해 교육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인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치적인 이유로 제주도에 온 유배인들은 당시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사대부는 본질적으로 정치인이자 교육자였기에 교육적 영향력도 상당했다. 대표적 인물이 송시열이다. 그는 제주향교에서 책을 빌려 적소에서 손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을 벌였고, 시간적 여유를 활용하여 저술활동을 펼쳤다. 유배지라는 공간적 한계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인들과 학문적 토론을 나눴다. 비록 제주도에 머문 시간이 100여일에 불과하였지만 교학활동에 이바지한 바가 컸기 때문에 서원 배향이 엄격히 금지되던 시기에도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다. 특히, 송시열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한시 9편을 지었다. 그는 시를 통해 공부론적 측면에서 토론의 중요성을 드러냈고, 수양론적 측면에서 오륜을 체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송시열의 제주유배생활을 기록한 글은 많이 있지만 그가 직접 쓴 글을 통해 그가 제주도 교육에 끼친 영향을 탐구하는 것은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나아가 송시열은 제주를 떠난 후에도 그의 문인들이 행정가나 유배인으로 제주도에 와서 교육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5
저자명
김성태
소장처
제주학회
조회
43
첨부파일
송시열의 제주유배 한시의 교육적 의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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