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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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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 산책로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장한철(張漢喆)영조20년(1744~)

 

조선 영조 때 제주도 대정현감과 강원도 흡곡현령을 지냈던 문사인데,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녹담거사(鹿潭居士)이고, 그의 고향이 이곳 한 대코지(한담)이나, 그의 후예들은 인동(仁同)으로 호적에 기록되고 있음

1770년 12월 25일 대과에 응시하려고 장삿배에 몸을 실어 한양을 향하던 그는 풍랑을 만나 한겨울의 바다를 표류하고, 사흘 뒤 그가 도착한 곳은 류큐, 오늘날의 오키나와의 호산도(虎山島)라는 섬이었음

- 다행히 며칠 뒤인 1771년 1월 2일 일본을 오가는 상선을 만나 구조되어 1월 6일에 흑산도 가까이에 다다랐으나 하늘은 그의 대과 응시를 거부하는 듯 다시 풍랑을 일으켜서 격랑 속을 표류하던 배는 청산도에 표착했고 그 과정에서 장한철과 동승했던 일행 29명 중 21명이 숨을 거두었음

- 우여곡절 끝에 대과를 치른 장한철은 낙방의 고배를 들이키며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표류담을 글로 남겼다. 그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최부의 『표해록』과 더불어 우리 나라 해양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8
첨부파일
장한철 산책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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