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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 승전비 안내문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범섬은 법환동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지나가던 도인이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범섬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주위가 약 2km되는 이 섬은 4면이 암벽으로 둘러싸여 그 특이한 풍치 뿐 아니라, 고려 공민왕 때 최영장군이 몽고의 세력을 소탕하면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목호의 두목을 쳐 부순 역사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1271년(고려 원종12년) 삼별초군이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 의하여 평정 된 후 본도에는 몽고인이 세운 원나라의 직영 목마장이 설치되고 이 목마장을 관리하는 몽고인 목호들이 주재하게 되었다. 명나라가 세워진 다음에도 계속 제주에 머물면서 관민을 괴롭히므로 고려 조정에서는 몇차례 이들을 토벌하려 했으나 그때 마다 오히려 그들에게 패전하곤 하였다. 이들은 심지어 조정에서 보낸 관리를 살해하는 등 그 횡포가 날로 심하여 1374년 공민왕은 목호들을 뿌리 뽑기 위하여 문하찬성사 최영(門下贊成事 崔瑩)을 삼도도통사로 삼고 목호들을 완전 섬멸할 것을 명령하자 최영장군은 전함 314척과 군사 2만 5천여명을 거느리고 동년 8월 28일 명월포로 상륙하였다. 그리하여 전 제주목사 박윤청을 목호에 보내어 귀순하도록 권하였으나 목호들은 이를 거절하고 안무사 이하생을 살해하고 대병력을 동원하여 저항하였다.

최영은 전 군을 독전(督戰)하여 명월촌에서부터 어름비오름, 은오름, 검은오름, 새벨오름, 예래(延來), 홍로 지경에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백방으로 공격하니 목호들은 견디지 못하여 호도(凡島)로 도망하였다. 최영장군(崔瑩將軍)은 전부령 정용으로 하여금 경함(經艦) 40척으로 범섬을 포위케 하고 스스로 정병(精兵)을 인솔하여 섬에 상륙 공격하니 목호의 괴수 초고독불화(肖古禿不花), 관음보(觀音保) 등은 스스로 남쪽 벼랑으로 투신 자결하고 석질리필사는 처자를 거느리고 투항하였다. 이에 최영장군은 초고독불화, 관음보의 시체를 인양하여 목을 베고 석질리필사는 처자와 함께 포로로 잡고 여적들은 모두 참수하여 왕경(王京)에 승전(勝戰) 보고를 하였으며 이때 동도합적(東道哈赤), 석다시만(石多時萬), 조장홀고손(趙莊忽古孫) 등이 아직 잔병 수백을 거느리고 있는 거성이 합락되지 않아 최영장군이 공격하자 달아나므로 이를 추적하여 잔적(殘敵)을 모조리 사로잡아 각 관아의 노비로 하였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5
첨부파일
최영 승전비 안내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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