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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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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전설: 원주변씨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우리 집안의 변자 안자열자가 우리 시조님이 되시고, 그다음에 우리 입도조가 한밭동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2323번지에 있습니다. 노형동 2323번지. 그 이후에 우리 입도조가 들어온데는 1373년이라고 그러는데 그 후에 1338년에 이제 입도되어있고 1405년에도 돼있는데 입도된 시기는 1405년도가 아니냐 해서 그런 얘기가 허다하게 많이 나와서 있습니다만,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실히 분간할 수도 없고. 우리 세자청자 할아버지는 자식이 4남매여서 서귀포에도 살고 여기도 살고 그랬는데 여기에는 노형동 속칭 지금 노형초등학교 북쪽에 베릿가름이라고 있는데 지금 거기는 전부 개발지구가 되버려서 없어졌습니다만, 거기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있었고. 이제 우리 할아버지가 지금 주학교수까지 했는데 제주도에 와서 사는 데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설이 내려왔고, 아이들도 있는데 아이들은 전부 먹을 것도 없이 힘들게 힘들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도 여러 사람이 보도 못했다는 전설도 있고 전혀 누구 도와줄 사람도 없고 해서 자식이 지게꾼의 지게를 써서 행상을 해가다가 여기 와서 지금 2323번지 여기에 와서 지게끈이 끊어지니까 더 갈수도 없고 더 가잰 해도 갈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여기 모셨다고 그런 전설이 내려왔습니다. 그 후에 일반사람들이 얘기하기로는 그 아무것도 없는 집안이니까 그렇게 끊어지난 그디 아무데나 던젼 내불어서. 제주도 말로 그렇게 했을 거고. 그 후에 어떤 육지분이 제주도 오게 돼서 그거는 이제 근방에 사는 사람이 초청해서 그 집안을 데려다가 산으로 돌아다니다가 이쪽으로 영 내려오는 찰나에 산이 좋았는지 어떻겠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보니까 좋아 봬서 아 이거 와서 보니까 참 장소는 상당히 좋은데 그 개판이란 게 있는데 개판이 황금개판이었으면 참 발복할건데 이거 참 뭘로 했는지도 모르지만 참 안됐다 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그때 아무것도 어선 보리나무로 핸 개판하는 척 핸 해실꺼우다 경 했댄 고릅디다 경 하난 그 지관이 아 그렇지 무릎 치면서 것이 맞은 말이다. 것이 황금개판이라 보리낭이 햇빛 비추면 반짝반짝 금이 나메 그거 참 잘해서 그것이 발복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 있구나 하는 그런 전설도 있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아이들도 자식들도 좋게 좀 잘하는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가문도 제주도에서 그렇게 떨어진 가문은 아닙니다. 서귀포에도 가면 여러 사람들 현대도 있습니다만, 그전에 보면 변 흥자명자나 신자중자나 성자우자나 성자부자나 성자운자나... 이런 분들이 상당히 그 당시에도 활력이 강했다고 저도 들었습니다. 활력도 강해났고. 지금도 그쪽에 가서 물어보면 동네 분들이 그 할아버지 잘 나나서 뭐 그런 소리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지금 하다보니까 우리 우에로도 현대에서도 고시도 합격한 사람 여럿 있고 괜찮게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발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앞으로 좋은 기회 있으면 또 한 번 찾아줬으면 잘 말씀드릴 기회 줬으면 좋겠습니다.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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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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