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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전설: 김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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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조 만희할아버지는 언제 들어왔느냐 1392년 10월달에 들어왔어요. 게난 고려조가 망해서 이태조가 이제 조선국을 건설하면서 그 고려조에서 무엇을 지냈냐면, 좌정승을 지냈는데 우리 조정에 나와서 일을 해달라 이렇게 이성계가 부탁을 하니 아니 어떻게 한 신하가 임금을 둘 씩 섬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참 우리가 도덕적으로 어느 면으로 봐도 부합되지 않아 저는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녀석 죽을 데로 보내야겠다  해서 제주로 유배를 보낸거에요. 게난 그 당시에 유배지로서는 제주도로 보내는 사람은 살라고 그러는게 아닙니다. 그때 생각을 해보세요. 조각배타고 보낸거야. 그래서 조그만치 80에 들어와서 91세까지 11년 동안을 유배생활을 해서 풀어줄라했어. 그럼 유배생활을 어디서 했나, 이 앞에서 보이는 저거, 곽지라그래 곽. 곽이라 그러죠. 그 오름 이제 그 여름에 적거생활이라 그래서 유배온 사람은 사람 사는데 같이 살질 못하게 한 거예요. 따로 떼어놔가지고. 적거생활이라 그러죠 그것은. 그래서 살면서 무엇을 했느냐. 아 역시 원래가 학자기 때문에 여기에 제주도민들의 교학. 그 글을 가르쳤죠. 그이름을 문을 송례문이라고 이름을 써붙여서, 송례헌이라. 소나무송, 예도례, 집헌. 송도의 예절을 가르치는 집이다. 이렇게 해서 11년동안 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주4현의 한 사람이죠. 제주4현을 일컫는다하면 김만희, 이미, 한천, 강영 이분들이 제주 4현입니다. 제주5현은 잠시 왔다 가분 분들이고. 제주4현은 제주도에 남아가지고 지금 현재도 후손들이 제주 전부가 제주에 살고 있어요 지금. 그러한 현실이죠. 그래서 나의 20대입니다. 내가 세로는 21세고, 대로는 20대 할아버지. 우리가 조상을 일컬을때에 우에 조상님을 이야기할 때 나는 몇 대손이라 그러고. 조상이 이거 몇 세손 이럴 때는 세로 나가 고랐죠. 하먼 여러분 국문학 하신분들은 나보다 더 잘 알건데. 

  우리 그 제주도민이 예를 들면 내가 6.25전쟁때 군인을 갔다왔는데 제주사람은 자기 이름자 주소 성명 못 쓰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데 내가 군인을 가보니까 육지분들은 주소 성명을 못써요. 군번 8자를 사흘을 가르쳐도 몰라. 그러면 제주도민이 그 문학적으로 그렇게 수준이 높았던 것은 바로 이분들이 덕택입니다. 그 유배 온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제주도민을 교학을 해서 가르쳐가지고 문화를 일으킨 거예요. 그 전에는 그렇게 큰 일이 없었는데 가만히 역사를 더듬어 보면 고려가 망해서 이조가 등극을 해서 그 시대에 이성계의 눈에 난 사람은 제주도로 보내부니까 그 사람들로 하여금 제주도 문학이 발달한 거예요.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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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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