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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김석윤을 통해 보는 근대 제주인의 사상적 섭렵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김석윤은 제주유림의 유학자이면서 출가한 승려이다. 출가 이후 제주의병항쟁에서 무기제조와 창의에 앞장서고 통고사를 작성하였으며 의병장을 역임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석윤의 생애를 통해 유학자로서의 의병활동, 승려로서의 불교활동 그리고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사상적 편력과 실천 양상은 곧 시대적 상황에 적극 참여한 제주 지식인의 사상적 고민과 실천의 면모라 하겠다. 김석윤은 출가한 승려이면서도 서재의 훈장을 하면서 제주의병항쟁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항일이력으로 일제의 감시로 인해 제주도를 떠나 용화사 선원을 근거지로 참선을 하였다. 제주도를 떠나 있으면서도 관음사 활동에 힘을 보태었으며 법정사 항일운동의 인적 토대 마련에도 관여한다. 법정사 항일운동 주역인 김연일과 강창규 방동화는 모두 김석윤과 연관이 있는 인물들이다. 193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제주도에서 활동을 재개하면서 일제의 사찰령을 피해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 선리참구원의 제1 지방분원으로 제주선원을 창립하였고, 1942년 제주도의 미륵교의 항일운동에도 김석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김석윤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제의 감시대상이었다. 김석윤은 미륵교에도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석윤은 다양한 사상에의 편력을 보여준다. 유학자이면서 출가한 승려이고, 승려이면서 다시 서재의 훈장을 하고, 미륵교를 신봉하는 면과 함께 선원에서의 참선 활동, 그리고 사찰의 주지 활동 등으로 생애를 꾸렸다. 이러한 김석윤의 모습은 구한말 이후 정치적 혼란만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다양했던 우리나라 사회상과 일치하는 지식인의 갈등의 일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석윤의 다양한 사상적 편력은 곧 근대 우리나라 지식인의 고민의 일면이며,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도 의지를 실천해내는 지식인의 책임이었다고 보인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3
저자명
한금순
소장처
KCI
조회
29
첨부파일
승려 김석윤을 통해 보는 근대 제주인의 사상적 섭렵.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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