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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 안달삼의 교유와 그 의미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탐라문화 51호

 

본고는 조선후기 제주 문인인 小栢 安達三(1837~1886)의 삶과 교유관계를 통해 그의 학술적 좌표를 살펴본 글이다. 본고에서는 안달삼이 학계에 다소 생소한 인물이기 때문에 먼저 그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그는 제주도 조천 출신이었는데, 조천은 당시 제주도를 대표하는 포구여서 많은 정보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그의 집안 분위기 역시 본토의 정보에 밝았고, 유가적 소양을 갖춘 문중에서 성장하였다. 이는 당시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사항이었다. 이어서 『소백처사유고』를 점검하였고, 문집에 보이는 교유관계를 중심으로 소백 안달삼의 학문적 위치를 추적하였다. 교유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노사 기정진과 면암 최익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문헌상으로 안달삼은 모두 3차례 노사 기정진을 만났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었고, 두 번째 만남에서는 노사 주변 문인과 제자들을 만나 교유하였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아들인 부해 안병택이 동행하여 노사 기정진을 만난다. 이렇게 스승을 찾아 바다를 건너는 경우는 현재 제주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안달삼은 면암 최익현이 제주도 유배 시에 처음 만났다. 최익현은 당시 안달삼이 가지고 있던 기정진의 글을 보고, 이에 공감을 가졌고, 제주도 해배 후에 기정진을 찾아가 만나게 된다. 이를 통해 노사학파와 화서학파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후 교유는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간다. 이 두 학파간의 교류의 시작점에 안달삼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학술상의 좌표를 표시할 수 있었다. 또 그 공간이 제주였다는 것 역시 매우 독특하면서도 유의미한 성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 학파는 안달삼의 아들인 안병택을 통해 재생산되고, 확대되어 간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제고할 수 있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6
저자명
김새미오
소장처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조회
42
첨부파일
김새미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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