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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제주사회와 김만덕 생애 재고찰

분야별정보 > 역사 > 인물



본고는 18~19세기 제주도 출신의 대표적 名人인 김만덕[1739년(영조15)~1812년(순조12)]의 생애를 당시 그녀가 살았던 제주사회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거시적이고 유기적인 연결고리 속에서 재고찰하였다. 김만덕이 살았던 18~19세기는 조선사회의 다방면에 있어 다양한 변화가 나타난 시기였다. 특히 어느 부문보다도 경제적인 면에서 확연한 발전양상을 띄었다. 이앙법의 본격적인 보급, 즉 농법 개량을 통한 농업 생산력 향상과 대동법의 실시, 화폐 사용을 통한 상품유통경제의 활성화에서 비롯된 경제적 발전으로 인구 증가 및 신분제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사회의 변화무쌍한 경제적 변화는 제주사회가 처한 열악한 자연지리적 조건에 부딪혀 그대로 전달․흡수되지 못하였다. 조선후기 접어들어서도 제주도는 각종 기상재해와 기근으로 말미암아 식량부족 및 민심동요 등 갖가지 사회문제가 야기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한편 조선후기 제주도에 들이닥친 3번의 연속적 대기근으로 제주사회는 더욱더 피폐해져 갔다.

김만덕이 왕성히 활동하던 시기는 3대 대기근 중 ‘임을대기근[1792년(정조16)~1795년(정조19)]’에 마주한 시기였다. 그녀는 변방의 섬인 제주도에서 태어나 기녀(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와 여성이라는 차별을 극복하고, 18세기 당시 명망 높은 기녀로서 제주도내 관리 및 지방의 유력 토호세력, 부호들을 비롯해 제주도를 왕래하는 육지 상인들을 상대로 한 妓房 혹은 舖를 기반으로 매점매석 등의 운영방식을 통해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최악의 흉년을 맞은 1795년(정조 19), 자신의 모은 재산을 기부하여 수많은 제주민들을 救命하였다. 이러한 선행으로 말미암아 김만덕은 그녀를 둘러싼 각종 장애요소들을 극복하고 한양으로의 상경, 왕(정조)과 왕비의 알현, 醫女班首의 직책 획득, 금강산 유람 등의 전례 없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당대 지식인들이었던 정치인, 학자, 문인들의 관심을 한 몸을 받으며 많은 칭송의 글과 시, 편액 등이 집필되어졌다. 김만덕의 의로운 선행은 현재까지도 뭇사람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이는 단지 한 제주여성에 대한 전기적 차원의 접근을 넘어 그녀의 생애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성 제시의 표본이 되고 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인물
생산연도
2019
저자명
김나영
소장처
KCI
조회
41
첨부파일
18·19세기 제주사회와 김만덕 생애 재고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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