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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사 항일운동 주동세력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

분야별정보 > 역사 > 항일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1집

1918년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제주도의 법정사의 주지인 김연일(金蓮日)과 제주도민 400여 명이 일으킨 항일운동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불교계가 주도한 항일운동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연구는 이러한 통설에 의문점을 갖고 그동안 이용되지 않은 자료를 중심으로 검토하여 이 운동이 불교도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태을교(太乙敎=仙道敎)가 주도한 것임을 논증한 것이다. 이 글에서 새롭게 이용한 자료는 1922년에 조선군참모부가 작성한 보고서「태을교에 관하여(太乙敎に就いて)」, 1920년에 고등경찰이 일본내각총리대신을 비롯한 각 기관에 보낸 보고서인「태을교 포교에 관한 건(太乙敎布敎に関する件)」, 1924년에 제주도청이 발간한 󰡔미개의 보고 제주도(未開の寶庫濟州島)󰡕등이다. 위의 자료에 의하면 주동자 김연일은 승려가 아니라 태을교의 간부이다. 1909년 강일순이 사망한 후 그의 제자인 차경석이 선도교라는 일 분파를 만들어 전국에서 신도를 모집하였다. 김연일은 경상북도 영일군 출신으로 제주도 법정사의 주지로 부임하였는데, 차경석과 함께 모의하여 제주도 법정사에서 선도교도를 이끌고 국권회복과 함께 교세확장을 위해 봉기한 것이다. 또한 법정사 창건의 매개 역할을 한 것이 근대에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창건된 관음사라는 절인데 이 절도 불교 사찰로 창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1908년경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 자신이 술회한 창건담을 보면 태을교적인 종교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 종교는 성립 당초부터 강일순 자신이 미륵불을 자처하였고 불교적인 요소를 강하게 수용하고 있었다. 또한 불교 사찰의 승려의 도움으로 선도교의 신자를 불교 신자로 위장시키기도 하였다. 즉, 불교사찰을 외피로 이용하여 일제의 탄압을 피하면서 국권회복운동과 교세확장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1910년 전후 창건된 법정사(法井寺)라는 절의 명칭도 불교적인 명칭으로 보기 어렵다. 특히 주목되는 사실은 차경석이 1924년에 선도교를 개명하여 보천교를 창설하는데 그 종교의 상징으로 ‘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의미는 물은 만물을 생성 양육하므로 보천교의 덕화가 널리 중생에 미친다는 것을 표상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점에 비추어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은 불교도에 의해 주도된 운동이 아니라 김연일 등 태을교(선도교)도들이 제주도에서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회복과 함께 태을교(선도교)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일으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항일운동
생산연도
2015
저자명
윤소영
소장처
KCI
조회
37
첨부파일
법정사 항일운동 주동세력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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