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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사 항일운동의 불교사적 의의

분야별정보 > 역사 > 항일운동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 제주도 서귀포 중문지역에서 승려, 불교신자, 지역농민 등이 전개한 항일무장투쟁이다. 이 항쟁은 법정사라는 사찰을 거점으로 하여, 법정사에 거주하거나 혹은 법정사와 연고가 있는 승려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사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불교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새로운 자료발굴과 함께 역사, 지방사, 인류학, 사회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연구 결과,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일정한 연구가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기존연구는 미시적인 접근과 편향적 이해에 머물러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나 평가가 부족했다. 본 연구는 기존 연구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법정사 항일운동을 6하 원칙에서 총체적인 정리를 시도하고, 나아가 법정사 항일운동에 나타난 불교적 이념이나 사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먼저 총체적인 이해와 관련해서 법정사 항일운동이 일어난 시점 및 기간, 장소, 항쟁의 주체, 항쟁의 목적, 항쟁의 방법, 항쟁의 원인의 6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법정사 항일운동은 법정사라는 사찰을 근거지로 하여, 김연일(법정사 주지), 강창규, 방동화와 같이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박처사로 대표되는 보천교(선도교)가 동조하고 법정사 주변의 불교신도들인 농민들과 화전민들이 참여한 불교계의 항쟁임을 밝혔다. 나아가 항쟁의 목적에서는 법정사 항일운동이 국권회복과 더불어 종교적 메시아의 도래, 불교의 포교가 공존하는, 즉 항일 민족운동과 종교를 통한 사회의 변혁을 지향했던 운동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한편 법정사 항일운동은 불교계의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저항의 방법으로 택함으로써 기존의 불교계의 항일운동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항쟁은 1918년 10월에 일어났는데, 이 시기는 일제가 조선토지조사사업을 마무리함으로써 한국의 농촌을 장악한 시기이기도 했다. 토지조사사업은 법정사 주변의 대부분의 신도들의 생활의 터전을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일제의 이러한 수탈은 법정사를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저항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상의 총체적인 분석을 통해 본 연구는 법정사 운동이 중생과 사회, 구체적으로는 중생의 삶의 터전인 민족과 국가를 보전하기 위한 대승불교의 실천운동임을 논증하였다. 마지막으로 법정사 항쟁에는 근대불교가 지향했던 민족불교론의 이념이 구현되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법정사 운동에 담겨있는 불교사상을 규명함으로써, 기존의 연구에서 진일보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법정사 항일운동은 그간의 근대불교사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케 할 여지가 다분하다. 즉 친일불교로 단정하였던 연구 경향을 성찰케 하고, 1910년대 불교사의 흐름의 다양성, 호국불교의 재검토 등이 그것이다. 추후에는 여기에서 나타난 특성을 근대 불교사에 적절하게 반영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항일운동
생산연도
2009
저자명
김광식
소장처
KCI
조회
47
첨부파일
법정사 항일운동의 불교사적 의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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