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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분야별정보 > 역사 > 항일운동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내세워 1918년 법정사에서 주지 김연일의 지휘 아래 지역 주민 700여명이 함께 일으킨 항일독립운동이다. 그간 일제의 의도적인 왜곡에 의해 보천교의 난으로 폄하되었던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 기존 연구와 달리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정리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국권회복을 기치로 내건 독립운동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거사로부터 시일이 멀어질수록 참여주민의 숫자를 700명에서 3백여 명으로 축소시켰고, 불교도들이 참여하였다는 처음의 기록은 점차 사교도들의 난리로 기록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이 보천교의 난으로 왜곡된 것은 바로 일제가 항일운동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폄하한 것이었다. 이후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시각은 보천교의 난으로 고정되어,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연구를 모두 이러한 시각과 연관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기존 연구의 법정사 항일운동의 날짜와 주도 세력에 대한 오해 등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에 일어났으며, 700여명의 주민이 동참하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형사사건부󰡕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사람들은 85%가 법정사 인근 마을인 좌면 출신 주민들이었다. 주도세력들은 법정사에 모이기 이전에 이미 승려로 출가한 사람들이 주가 되었으며, 이들이 법정사에 모여 거사를 준비하였다. 법정사에 모인 신도들에게 거사의 뜻을 알리고 주변에 동참을 권유하면서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에 참여한 주민들도 자신들이 참여한 거사가 일본인을 몰아내려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도 살펴보았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이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700여 주민들이 참여한 항일운동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항일운동
생산연도
2007
저자명
한금순
소장처
KCI
조회
43
첨부파일
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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