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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선비 김여휘의 유구 표류와 송환 경로(1662~1663년)

분야별정보 > 역사 > 기타



1662년 해남 선비 김여휘와 제주 사람이 포함된 32명의 조선인이 해난사고를 당하여 유구국 아마미오시마로 표류하였다. 그들은 9월 24일[서력 11.4] 제주 별도포를 출발하여 해남으로 향하다가 추자도 부근에서 서북풍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하여 10월 5일[서력 11.15] 유구인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들 중 4명은 그들의 동료가 구조되기도 전에 배 안에서 목이 말라 숨졌다. 생존자 28명은 그곳에서 사쓰마로 이송된 뒤 나가사키에서 조사를 받고 대마도로 넘겨졌다. 1663년 5월 27일[서력 7.2] 대마도에 도착하자마자 김여휘 일행은 다시 심문을 받았다. 일본에서 모든 조사 일정을 마치고 그들이 부산포로 건너온 것은 7월 5일[서력 8.7]이었다. 왜관에서 다시 조사를 받은 그들은 부산첨사와 동래부사에게 인계된 뒤에도 마지막으로 조선 측의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김여휘 일행이 고향 해남으로 돌아온 것은 7월 25일[서력 8.27]이었는데, 그의 아내는 4월 17일[서력 5.23]에 이미 사망하고 말았다. 이 해난사고는 1663년 한・일 간 울릉도 쟁계와 관련되어 있는 안용복의 제1차 도항, 그리고 1802년 문순득의 유구 아마미오시마 표류와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12
저자명
정성일
소장처
KCI
조회
11
첨부파일
해남 선비 김여휘의 유구 표류와 송환 경로(1662~1663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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