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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獻과 考古資料로 본 麗末鮮初 제주의 기와 수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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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실학 59

최근 제주시 광양로터리 인근의 숙박시설 부지 내에서 발굴된 2기의 瓦窯址는 고 려시대의 유구로 파악되고 있어서 늦어도 여말선초시기 제주지역에는 기와수공업이 실재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하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여말선초시기 제 주지역의 수공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대부분 유배인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어 아 쉬움이 있다. 때문에 여말선초시기 기와수공업에 대한 접근 방식을 고려시대 제주 지 역 창건 사찰의 사찰수공업 운영 방식을 내륙 사찰과 비교 검토하거나, 여말선초시기 의 제주 행정관서에 대한 일련의 발굴 결과를 반영하여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당시의 제주사회상을 알려주는 내용이 있는데, [궁실] 항목의 弘化閣과 [누정] 항목의 觀德亭에 대한 기사이다. 1435년에 화 재로 소실된 관청 건물을 중수할 때 廢寺된 사찰의 기와를 재활용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제주에서는 그 이전부터 기와를 사용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제주 지역에는 고 려시대부터 운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찰이 15處 내외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수 정사는 법화사 ‧ 원당사와 함께 고려시대 제주의 3대 사찰로 손꼽혔다. 고려시대의 사찰들은 자체적으로 필요한 僧物의 제작이나 사찰건축에 필요한 물자의 생산 기능 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제주지역에서 운용되었던 사찰에서도 그 기능을 유지하였 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삼별초의 제주 진입과 함께 유입되었을 각종 수공업 문화 는 기존의 사원수공업과 함께 여말선초 수공업 문화의 한 축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 판단된다. 홍화각의 중수 때 함께 마련된 건물은 모두 206칸으로 상당한 규모를 보인다. 많 은 건물을 중수하거나 신축할 때에는 당연히 상당한 양의 건축자재를 필요로 하는데, 기와 또한 상당량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홍화각 중수에 폐사된 사찰의 기와를 사용하 였다고는 하지만 그 사용처가 담장지에 제한적으로 쓰였다는 발굴 결과를 반영한다 면, 신축 건물에 쓰였을 기와는 새롭게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기 와 생산 방식이 수요처의 인근에서 제작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주목 관 아지와 가까운 곳에 당시의 기와 가마터가 존재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전영준
소장처
KCI
조회
36
첨부파일
文獻과 考古資料로 본 麗末鮮初 제주의 기와수공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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