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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도의 기후와 그에 대한 주민의 대응에 관한 연구

분야별정보 > 역사 > 기타



건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기후와 기상재해 특성을 살펴보고, 지역 주민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분석하여 제주도의 기후에 대한 주민들의 대응 방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조선시대 제주도에서의 이상기상 발생 빈도는 16세기 중반부터 점차 증가하여 17세기에 급증하는 양상을 보였고, 19세기에는 급감하였다. 17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의 절정기로 기후변동이 심했고, 제주도에서도 이 시기에 강풍ㆍ폭우ㆍ가뭄ㆍ대설ㆍ한파가 많았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기상재해는 풍해가 가장 많았고, 수해, 가뭄, 동해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제주목에서 기상재해가 가장 많았고 대정현, 정의현 순이었다. 조선시대 제주도 농민은 바람에 대응하여 방풍림을 조성하고, 돌담을 쌓았다. 제주도 농민은 가뭄에 대응하기 위해 복토농법과 답전농법을 행하였고, 지력을 보호하기 위해 휴경농법과 바령농법도 행하였다. 또한 농민은 기상재해에 대비하여 구황작물을 재배했다. 구황작물은 재배 기간이 짧거나 기상재해에 견디는 적응력이 뛰어난 특성이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 어민은 바람을 적절히 이용하며 항해 및 어로 작업을 전개했다. 제주도에서 한반도로 나갈 때는 동풍, 남동풍을 이용했고, 돌아올 때는 북풍과 북서풍을 이용했다. 강풍일에 항해할 경우 안전 항해를 위해 제주도 현무암을 선박에 적재했다. 제주도에는 바람이 강하여 풍신을 모시는 민간신앙이 발달했다. 바람 문화를 대표하는 신앙은 ‘영등제’로 겨울에서 봄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강풍과 일기 변화가 심하다는 기후 문화의 일면이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기후변동을 살펴보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소빙기 상황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7세기의 이상저온 현상이 제주도에서도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제주도의 기상재해는 수해가 많은 한반도와는 달리 풍해가 가장 많았으며, 주요인은 태풍이었다. 기후에 대응한 제주도 주민의 생산 활동과 생활 방식은 지역 문화의 기저가 되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09
저자명
김오진
소장처
건국대학교 상허기념도서관
조회
37
첨부파일
조선시대 제주도의 기후와 그에 대한 주민의 대응에 관한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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