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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행 ‘官海路’에서 출항포구의 변화

분야별정보 > 역사 > 기타



한국학논총 50호

 

본 논문은 조선시기 제주 ‘관해로’와 관련하여 육지부 포구의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지리지에서 언급한 육지부 출발포구는 모두 3곳(나주, 해남 삼촌포, 강진 군영포)으로 조선시기 내내 변경이 없다. 이런 지리지의 내용을 다른 기록에 나타나는 제주 출항 예를 찾아 견주어 보았다. 그리하여 지리지의 기록과는 달리 조선 초기의 제주행 출항포구는 모두가 변경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주 출항의 경우는 1433년 무렵에 나주의 목포에서 직통으로 제주 가는 공식 관해로가 폐쇄되고, 영암 고달도(이진)로 변경되었다. 해남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현산면의 남포에 이어서 조선 초인 1412년 화산면 삼촌포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15세기 중반 무렵에 화산면 관동마을 남쪽에 있는 館頭浦로 이전되었다. 강진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강진읍 군영포를 이용하다가 17세기 중반 이후에 남당포가 공인된 제주 왕래 포구로 변경된 듯하다. 이렇게 육지부 출발포구가 모두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기에 편찬된 여러 지리지에서는 사라진 옛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제주해로에 관한 경로도 변경 없다. 이는 기왕의 『고려사』 내용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로 판단된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18
저자명
변남주
소장처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조회
20
첨부파일
조선시대 제주행 ‘관해로’에서 출항포구의 변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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