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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도서(섬)의 인식과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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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땅이자 영토의 일부이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전근대 왕조에서도 섬과섬 주민을 관리, 감독, 보호해야 했다. 모든 땅이 공유지인 왕토(王土)라는 전근대 왕토사상에 견주어 보지 않더라도 당연히 국가에서 섬의 실태 파악과 이용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국가의 영토 안에 소속된섬 역시 왕화(王化)의 대상이다.

 궁예정권하의 왕건은 해군대장군(海軍大將軍)으로 진도군(珍島郡)과 고이도(皐夷島)를 점령하여 나주로 이어지는 뱃길까지도 장악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해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뱃길의 길목인 압해도((壓海島 : 壓海縣)를 장악하고있던 능창(能昌)을 제압하면서 서남해지역과 해상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태조는 대표적인 원해(遠海)의 해양세력이 존속하는 우산국(울릉도) 과 탐라국(제주)을 복속시켰다. 이로써 동해의 울릉도와 함께 서남해의 탐라가고려의 군현제 내에 포함되면서 고려의 해양 영역은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한편, 대몽항쟁기에는 천도지로서 강화도(江華島)와 삼별초 항쟁의 근거지인진도, 제주가 가장 중요한 섬으로 주목되었다. 또한 해도입보 과정에서 서해 연안의 섬들이 많이 이용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몇몇 섬이 개발되기도 하였고, 새로이 파악된 섬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말선초기에 왜구의 침략때문에 혼란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선초기까지 섬의 ‘공도화’와 쇄환정책’을 추진하면서 섬의 황폐화가 지속되었다.이렇게 고려초부터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영했던 섬은 연안 군현의 관할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했고, 강화·진도·거제·압해·남해·옹진현처럼 그 자체가 독립된군현의 영역으로 편제되기도 했다. 우리 역사상 인구와 면적의 규모, 그리고 경제적 효용 가치 등이 컸던 ‘섬’을 주목하여 적극적으로 지방행정 단위로의 편제뿐만 아니라 섬의 개발과 이용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국가는 고려가 처음이었다.고려시대 섬에 대한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섬을 개발하고 그로부터 국가의 재부를 창출하려는 인식이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바다와 섬의 이점을 인식하고, 그 이점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개발 정책을 취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17
저자명
홍영의
소장처
KCI
조회
32
첨부파일
고려시대의 도서(섬)의 인식과 개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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