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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말(元末) 토곤 테무르 카안의 탐라궁전(耽羅宮殿)

분야별정보 > 역사 > 기타



탐라문화 53호

 

惠宗 토곤 테무르 카안이 탐라에 조성한 궁전을 紅巾賊이나 농민반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도피를 목적으로 한 ‘피난궁전’으로 규정하는 학계의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홍건적은 토곤 테무르가 궁전 조성을 계획했던 1367년 2월 이전에 이미 元軍에 의해 와해되어 도둑의 무리로 전락했으므로 위협적인 세력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이 시기는 강남의 대표적인 反元세력인 주원장과 장사성이 대립하며 전쟁을 벌이는 때였으므로, 토곤 테무르가 이들을 위협적이라고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

 당시 토곤 테무르에게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은 奇皇后로 대표되는 황태자 권력의 2차례에 걸친 內禪시도와 軍閥 간의 대립으로 그가 실권을 상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권을 상실하고 허수아비 황제로 전락하게 되자 권력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 大都에서 잇달아 전염병이 발병하자, 황태자 아유시라다라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자신은 탐라에 궁전을 조성하고 옮겨 살기를 희망했다고 볼 수 있다.14세기에 이르면 탐라는 대도의 물질문명과 몽골의 목축기술 전파로 이미 몽골化한 국제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몽골인들은 이질적인 풍광을 지닌 탐라를 ‘樂土’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 토곤 테무르가 탐라에 궁전을 조성하고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윤은숙
소장처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조회
18
첨부파일
원말(元末) 토곤 테무르 카안의 탐라궁전(耽羅宮殿).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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