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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竹中缶詰製造所(죽중부힐제조소)의 제주도 진출과 사업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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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회 2015년 제43차 전국학술대회

일본인들의 제주도 진출은 한일합방1) 이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져 본도에 거주하는 일본인 수가 1916년 840명, 1926년 1,083명, 1936년 1,414명, 1942년 1,357명에 이르렀다.2)이들의 본적지는 1926년도 기준으로 오이타현(大分縣) 149명, 야마구치현(山口縣) 128명, 구마모토현(態本縣) 103명, 나가사키현(長崎縣) 99명, 가고시마현(鹿児島県)48명, 에히메현(愛媛県)36명, 후쿠오카현(福岡県) 34명, 가가와현(香川縣) 32명, 사가현(佐賀県) 31명 등으로 일본 각지에서 이주하여 왔다. 제주도에 살았던 일본인들은 제주시 576명, 서귀포 168명, 성산포 63명, 모슬포 31명, 그 외에 추자도 대서리, 김녕리, 조천리, 한림리 등에 살았다.3) 일본인의 직업은 1925년 기준으로 공무·자유업(348명), 상업·교통(323명), 어업(204명), 공업(68명), 농업·목축업(8명), 기타(154명) 순으로 나타났다.4)일제강점기5) 일본은 토지 세부측량을 통한 토지 조사사업, 어업권 면허 설정, 한라산의 임산물 처분, 본도의 생산물을 일본 또는 육지부의 본사로 수송하기 위해 도로와 교통, 항만개발 사업 등의 기간산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일본의 잠수기업자들은 1908년 강압적으로 한·일간에 어업협정을 체결하여 일본인들의 한반도에 대한 어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면서 수산업 종사자들의 본도로의 이주가 이루어졌다. 더욱이 일본인들은 어로 작업 이외에 각종 수산물을 가공하는 통조림공장과 패각(貝殼)을 이용한 단추공장 등을 많이 경영하면서 제주도 항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외에도 일제는 본국 출신의 제주도 이주민들에게 금융업6), 석유판매업, 전기업 등을 독점기업으로 삼았으며, 수산물·임산물 가공업 등 각종 사업에도 독점적인 특혜를 주어 도내의 자원을 이용하기 위한 작업을 빠르게 수행해 나갔다.7) 그 중에서 재조일본인기업가 다케나카가(竹中家)는 본사인 교토(京都) 후시미(伏見)공장과 조선에서 최초의 분(分)공장인 제주공장을 시작으로 조선에서 여러 개의 공장을 설립하면서 다케나카통조림제조소(군수통조림공장) 사업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제주도를 비롯한 조선에 진출한 수산물가공업자 다케나카신타로(竹中新太郞, 1891∼19 7)의 활동을 고찰하는데 있다. 본고의 구성은 우선, 조선의 통조림공장 설립 현황, 다음으로 竹中缶詰製造所의 제주도 진출, 마지막으로 竹中缶詰製造所의 사업전개로 이루어졌다.

유형
세미나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15
저자명
고광명
소장처
제주학회
조회
62
첨부파일
일제강점기 竹中缶詰製造所(죽중부힐제조소)의 제주도 진출과 사업전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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