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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역사적 토포스 페리퍼리 그리고 프론티어

분야별정보 > 역사 > 기타



탐라문화 31호

 

제주도의 역사적 위상은 두 가지 상반된 구조를 갖고 있다. 하나는 중앙권력 에서 바라보는 변경에 위치한 페리퍼리로서의 제주도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등 외국과의 최선단 접촉점에 서 있는 프론티어로서의 제주도이다. 본 논문에 서는 페리퍼리와 프론티어라는 상반된 인식구조를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의 자료에 입각하여, 제주도의 전통적 역사적 위상을 검토한다. 페리퍼리라는 입장에서 보는 제주도는 무엇보다 중앙을 보호하는 국방의 전 초기지였다. 해금정책의 기반에 서서, 왜구의 퇴치에 행정력을 동원했던 조선왕 조는 제주도를 왜구침입 봉쇄의 전초기지로 설정하고 이에 입각한 군사 및 행 정을 실시하였다. 두 번째로 제주도는 본토의 중앙 정부에 말과 해산물을 중심 으로 한 제주도 특유의 지방 토산품을 공납해야 하는 경제적 페리퍼리로서 공 물이 수탈되는 변경이었다. 세 번째로 제주도는 중앙의 선진문화가 미치기 힘 든 미개한 변경지역으로 규정되면서, 조선 전 기간을 통하여 문화교육 및 통제 를 받는 유교적 교화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제주도인의 주체적 입장에서 보면, 제주도는 자신의 고유 문화전통과 생활관습을 갖고 있는 삶의 프론티어이자 대외적 진출의 전초기지였다. 쌀농사 에 적합하지 않은 제주도의 자연조건은 제조도인을 어업 및 무역의 영역으로 이끌었고, 항해 중 표류되어 외국을 경험했던 사람들을 포함한 제주도인은 보 다 넓은 식견과 전망을 갖고 사는 프론티어의 개척자였다. 뿐만 아니라 본토의 남해연안으로 이주했던 포작인, 잠녀 등 일부의 제주도인은 외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삶의 공간을 창출하면서, 제주도인의 삶의 영역을 확장하여 갔다. 페리퍼리와 프론티어라는 상반된 제주도의 역사적 위상은 중앙의 일방적 지 배구조, 이에 대처하는 제주도인의 주체적 삶의 방식이 빗어낸 역사적 유산으 로, 오늘날에도 그 유산은 갈등을 안은 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의 진 정한 역사적 위상은 제주도인 스스로가 창출하고 보전하려는 노력 속에 정립되 어야 할 것이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기타
생산연도
2007
저자명
허남린
소장처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조회
17
첨부파일
제주도의 역사적 토포스 페리퍼리 그리고 프론티어-허남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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