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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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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幷序)

  • 2013-04-09
  • 조회 1191
첨부파일
탐라지도병서-1709.jpg
●크기 : 154cm x 94cm ●제작시기 : 1709년(숙종35녀) ●지도형태 : 흑백 목판본 ●제작 : 이규성(李奎成) ●소장처 :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 탐라지도병서는 3단을 구성되어 있다. 상단과 하단에는 제주도의 지리적 상황을 기록하고, 중간에 제주도를 목판에 새겼다. 18세기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제주도 지도처럼 지도 주변에 24방위를 표시하고, 일본, 중국, 전남지역을 기록하였다. 상, 하단의 지리적 상황을 참고하면 제주도의 동서는 140여리이고 남북은 70여리라고 적고 있다. 목장은 13곳인데 제주목에 7개소, 정의현에 3개소, 대정현에 3개소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지도에 적힌 10개소보다 3개소가 더 소개되어 있다. 봉수는 25곳이고, 연대는 38곳이며, 과원은 40곳이고, 방호소는 9개소이다. 촌점(村点)은 150곳인데 제주목이 102곳, 정의현이 35곳, 대정현이 13곳이다. 호구는 8,955호인데 제주가 6,991호, 정의현이 1,449호, 대정은 815호이다. 인구는 총 45,129명인데 제주가 33,585명이고 정의가 7,459명, 대정이 4,058명이다. 18세기 초 제주도의 인구는 45,129명이었다. 주요한 오름은 거의 표기했는데 산모양을 음각으로 해 오름의 이름을 적고 있다. 또 포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주변의 바다를 파도 무늬로 그렸는데, 이런 바다의 표현법은 조선전기의 표현법을 이은 것이다. 맨 마지막에 '강희기축(康熙己丑)'이라는 간기(刊記)가 있는데 이 해는 1709년(숙종 35년)이다. 제작연대가 정확히 밝혀진 지도는 탐라순력도 뿐인 점으로 보아 귀중한 기록이다. 간행자가 이등(李等)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목사 이규성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제주목 선생안에 의하면 이규성은 1707년애 부임해 1709년 5월에 이임했다. 이 지도는 그가 이임하기 4개월 전인 1709년 정월에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