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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

제주학연구센터의 연구성과를 알려드립니다.

[뉴스N제주]제주학연구센터, ‘제주 돌하르방과 석장승(벅수)’ 비교민속학적 연구 보고서 발간

  • 2025-11-10
  •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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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sn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152

제주학연구센터, ‘제주 돌하르방과 석장승(벅수)’ 비교민속학적 연구 보고서 발간

17~18세기 역병 퇴치 신앙의 상징… 돌하르방, 벅수와의 연관성 규명
제주역사문화재돌봄센터, 동자복 · 서자복 돌하르방 세척
동자복 · 서자복 돌하르방 세척 모습
제주학연구센터(센터장 김완병)는 2025년도 외부공모 지원 과제로 수행된 「제주 돌하르방과 석장승(벅수)의 비교민속학적 연구」(연구책임자 좌혜경) 보고서를 지난 10월 31일 발간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육지부 현지 조사와 문헌 분석을 통해 한국의 석장승(벅수)의 조성 시기, 형태적 특징, 기능을 고찰하고 이를 제주 돌하르방과 비교함으로써, 돌하르방의 역사적·민속학적 위상을 밝히기 위해 추진됐다.

17~19세기 ‘역병 퇴치’ 신앙의 산물

연구진은 2024년부터 육지부 석장승 220여 기 가운데 58곳 147기를 직접 조사·분석한 결과, 영호남 지역의 벅수가 17세기~19세기에 조성되었으며, 천연두(두창)나 역병을 몰아내는 역신(疫神) 퇴치의 기능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조선 숙종과 영조 대에는 전국적으로 역병이 창궐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장군형 벅수와 당산 신앙이 확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 돌하르방, 성문 수호신에서 공동체 신상으로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읍성의 돌하르방은 동·서·남문에 배치되어 외적과 잡귀를 막는 수문장(守門將)이자 수호신(守護神)의 역할을 했다.

형상적으로는 벙거지형 모자, 큰 눈과 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잡귀를 누르는 자세 등에서 ‘장군형 수호신상’의 특징을 보인다.

이 같은 모습은 육지부의 전북 부안읍성(1671년·1689년)의 장군형 벅수와 유사하며, 특히 부안 동문 벅수의 얼굴상이 제주 돌하르방과 흡사한 점이 주목된다.

‘옹중석’ 명칭의 기원과 민속학적 의미

김몽규 목사가 영조 30년(1754년)에 제주읍성 문 밖에 ‘옹중석(翁仲石)’을 세웠다는 기록(『탐라기년』, 『증보탐라지』)은 돌하르방이 중국 진나라 장수 완옹중(阮翁仲)의 이름에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돌하르방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성문을 지키고 지역민을 보호하는 신적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정·정의현성 돌하르방의 ‘미륵 벅수’적 특징

대정성과 정의현성의 돌하르방은 인면형이면서도 육지부의 마을 미륵 벅수와 유사한 형상을 띤다. 연구진은 이를 선도계 미륵신앙이 민간신앙과 결합한 형태로 보며, 마을 수호와 지역민 보호, 비보(裨補)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분석했다.

현대적 보존과 공동 연구 필요

보고서는 “돌하르방과 벅수는 모두 역병을 물리치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던 민신(民神)으로, 그 조형적 단순성과 불완전함 속에 인간적 친근함과 정직성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300년이 지난 지금, 마모와 훼손이 심각한 만큼 제주 돌하르방과 육지부 벅수의 공동 보존 및 학술 교류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출처 : 뉴스N제주(http://www.newsn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