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역사

19486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3298 고문헌 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가 장계하여, “탐라(耽羅)에 이전(移轉)할 곡물은 장흥(長興)에 미(米) 150섬, 조(租) 300섬, 피모(皮牟) 1000섬, 해남(海南)에 미 40섬, 피모 1000섬, 강진(康津)에 미 70섬, 조 200섬, 피모 700섬, 영암(靈巖)에 미 40섬, 조 500섬, 피모 1000섬 등 모두 5000섬을 바다에 가까운 이들 여러 군(郡)에서 마련하여 내도록 한 다음, 별도로 능주 목사(綾州牧使) 조익현(趙翼鉉)을 독운 차사원(督運差使員)으로 정하고 막속(幕屬)을 보내어 감동(監董)하고 신칙해서 신임 목사가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넘겨주게 하였습니다. 짐을 실어 나를 인력은 적절히 헤아려 역량(役粮)을 지급하기도 하고 연역(煙役)을 견감해 주기도 하겠으며, 각 배의 사격(沙格)과 감색(監色)은 원래의 뱃삯 외에 넉넉히 값을 더 지급하겠습니다. 해신제(海神祭)의 날짜는 다음 달 13일로 가려 정했으니, 향축(香祝)은 규례를 살펴 마련해서 내려보내게 하소서. 아직 마련해 낼 방도를 정하지 않은 곡식 및 별도로 내리는 진휼 물자 각 5000섬은 내년 봄에 방도를 마련하여 제때에 받아 운송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이에 전 승지 겸 검교직각 서영보(徐榮輔)에 대한 투비(投畀)를 용서한 다음 쌀을 실어 내는 지방을 두루 다니며 백성들의 폐막을 살피고 곡물을 조사해서 배가 출발하는 곳까지 운반하게 하고, 이어서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에 이르러 헌관이 되어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받들며, 복명(復命)하는 날에도 지나오는 연읍(沿邑)에서 백성들을 위유(慰諭)하고 백성의 고통을 상세히 물어 오게 하며,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짜와 배가 출발하는 날짜에 대해 다시 관상감 제조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내려보내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
3297 고문헌 중희당(重熙堂)에서 호남 위유사(湖南慰諭使) 서영보(徐榮輔)를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6
3296 고문헌 전라도 유학(幼學) 이유곤(李維坤) 등 445명이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8
3295 고문헌 정리소의 돈 1만 냥을 전라 감사에게 떼어 주어 형편에 따라 곡물로 바꾸어서 탐라(耽羅)로 실어 보내 주어 진휼하는 재원으로 삼게 하도록 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8
3294 고문헌 탐라(耽羅)의 수신(守臣)은 진곡(賑穀)을 순조롭게 운송한 상황 및 고루 분급한 내용을 계속해서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2
3293 고문헌 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를 월봉(越俸) 1등(等)에 처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7
3292 고문헌 정리의궤청(整理儀軌廳)이 본소(本所)에서 쓰고 남은 돈 2만 냥을 삼도(三都)와 팔도(八道)에 나누어 보내 을묘정리곡(乙卯整理穀)으로 만들자고 아뢰어 윤허하였다. 경기 감사 서유방, 호조 판서 이시수, 예조 판서 민종현을 추가로 정리의궤청 편집 당상으로 차하하며 초계 문신 조석중과 황기천을 등록 낭청(謄錄郎廳)으로 계하(啓下)받으라고 명하였다. 전 현감 김홍도는 군함(軍銜)에 붙이고 가평 군수(加平郡守) 유득공(柳得恭)과 직산 현감(稷山縣監) 정우태(丁遇泰)는 올라와서 공사를 살피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9
3291 고문헌 판의금부사 홍양호(洪良浩)를 삭직(削職)하고, 동지의금부사 이한풍(李漢豐)ㆍ이의필(李義弼)ㆍ김이익(金履翼)을 체차하고, 승지 김면주(金勉柱)ㆍ이조원(李肇源)ㆍ송민재(宋民載)를 파직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2
3290 고문헌 사간 이현도(李顯道)를 흑산도(黑山島)에 정배(定配)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6
3289 고문헌 신방(新榜) 안형직(安衡稷)은 첨지에 단부(單付)하고, 탐라(耽羅)의 문신 이태상(李台祥) 등은 먼저 주서에 부직(付職)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8
3288 고문헌 정리곡(整理穀)을 팔도(八道)와 삼도(三都)에 나누어 주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9
3287 고문헌 함흥과 영흥의 입격(入格)한 유생과 무사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고, 내각은 《풍패빈흥록(豐沛賓興錄)》을 간행하여 반포(頒布)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