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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

19486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3190 고문헌 사간 이현도(李顯道)를 흑산도(黑山島)에 정배(定配)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5
3189 고문헌 검교직각 이만수(李晩秀)와 남공철(南公轍)을 추자도(楸子島)에 정배(定配)하였다가 곧이어 용서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5
3188 고문헌 호남 암행 어사 정만석(鄭晩錫)이 복명하여, 중희당(重熙堂)에서 소견(召見)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2
3187 고문헌 각 해당 관사에 대해 상언(上言) 37도(度)를 판하(判下)하였다. 문간공(文簡公) 박상(朴祥)에 대해 특별히 불천위(不遷位)로 허락하고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며, 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도 일체로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고, 도배(島配)된 죄인 이후전(李後傳)의 어미와 처(妻)에게 배소(配所)로 가서 만나는 것을 허락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24
3186 고문헌 호남 도신이 거론한 진도군(珍島郡)과 영암군(靈巖郡) 소안도(所安島)의 여섯 가지 폐단을 바로잡겠다는 장본(狀本)에 대해 비국이 회계(回啓)한 것은 모두 아뢴 대로 시행하게 하고, 진도 목장의 송전(松田) 명색은 혁파하고 소안도에서 궁방(宮房)에 바치는 것도 모두 호조에 세금으로 내고 그 나머지 토지에서 나오는 것은 섬사람들에게 내주라고 명하였다. 이어 전후로 아뢴 것에 대해, 도신으로 하여금 비답에서 하교한 것과 폐단을 바로잡은 사건을 써서 군아(郡衙), 목관(牧館), 도해(島廨)에 게판(揭板)하고 5년 동안 해마다 연말에 바로잡은 여러 조항의 이해(利害)를 조목조목 나열하여 보고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41
3185 고문헌 형조가 격쟁인(擊錚人)의 원정(原情)으로 아뢰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27
3184 고문헌 전라 감사 이득신(李得臣)이 유구국(琉球國)의 표류한 배를 대양(大洋)을 따라 호송하였다고 급히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1년 (1797) 22
3183 고문헌 제주 목사(濟州牧使) 조명집(曺命楫)이, 본주(本州)에 사는 백성 조필혁(趙必爀) 등이 표류했다가 살아서 돌아왔다고 급하게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23
3182 고문헌 상께서 야주개(夜晝峴)에 나아가셨는데, 내가 뒤따라 나아가서 대내(大內)로 돌아가실 것을 청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영조45년 (1769) 45
3181 고문헌 수찬 이병모(李秉模)가 상서(上書)하여 윤양후(尹養厚)와 홍양한(洪良漢)을 논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영조52년 (1776) 23
3180 고문헌 김상로의 아들 김치양(金致讓) 등을 안치하고 김치현(金致顯)은 처분을 기다리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즉위년 (1776) 23
3179 고문헌 의금부가 박상로 등에 연좌해야 할 사람들을 정배하고 적몰(籍沒)하고 저택(瀦澤)할 일로 아뢰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즉위년 (177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