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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 > 일성록

1067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431 고문헌 이조 참의 심환지(沈煥之)가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2
430 고문헌 전 제주 판관(濟州判官) 전우성(全宇成)의 죄명은 논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2
429 고문헌 100세 및 8, 9십 세 노인에게는 미육(米肉)을 세찬(歲饌)의 예대로 제급하고, 그중 100세 노인인 전 지사(知事) 이여상(李如尙)은 특별히 한 자급을 올려 주고 의자(衣資)를 넉넉히 지급하며, 문관, 음관(蔭官), 무관으로 도류(徒流)나 파삭(罷削) 이하의 죄명 및 사서(士庶)로서 도류나 경죄(輕罪)를 지은 사람은 모두 탕척(蕩滌)해 주며, 유생으로서 정거(停擧)된 자도 용서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2
428 고문헌 별감 한명흡(韓命翕) 등은 장을 친 다음 감방(勘放)하고, 서경식(徐敬植)이 고의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정황은 다시 엄히 신문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1
427 고문헌 전 이조 판서 김사목(金思穆)을 제주 목사(濟州牧使)에 옮겨 보임하고, 참판 이병정(李秉鼎)과 참의 조윤대(曺允大)의 직명을 간삭(刊削)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3
426 고문헌 전 제주 목사(濟州牧使) 이철운(李喆運)은 엄하게 추고(推考)하고, 제주 감목관(濟州監牧官) 김세진(金世珍)은 곤장을 쳐서 다스리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1
425 고문헌 전 대사간 윤확(尹㬦), 전 장령 유이현(柳頤玄)을 파직하고, 동의해 준 삼사의 여러 신하를 엄하게 추고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3
424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약원 제조, 대신,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2
423 고문헌 의금부가 홍명호 등의 세 번째 공초를 아뢴 데 대해, 시행하지 말고 홍명호는 엄히 신문하여 실정을 알아내고 홍의영과 이익진은 다시 공초를 받으며 기록을 맡은 도사는 서간(西間)에 엄히 가두고 이경운에 대한 처분은 우선 놔두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4
422 고문헌 전라 감사 정민시(鄭民始)가 표류되었던 제주목(濟州牧)의 백성이 살아서 돌아온 일에 대해 급히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1
421 고문헌 죄인 신기현은 사형을 감하여 도배(島配)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2
420 고문헌 중희당(重熙堂)에서 호남 구관 당상(湖南句管堂上) 서유린(徐有隣)을 소견하였다. 호남의 곡물 1만 섬을 차원(差員)을 정하여 제주목(濟州牧)으로 이전(移轉)해 주고, 배가 출발하는 곳과 도착할 곳에서는 모두 해신(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되 제문은 직접 지어 주겠고, 제주목에서 바쳐야 할 삭선(朔饍)과 방물(方物)은 보릿가을까지 정지하고, 경각사(京各司)에 바치는 것과 각 시(寺)의 노비 신공미(身貢米) 당년조는 모두 탕감해 주고, 영운(領運)하여 올라온 백성에게는 옷과 양식을 지급하여 내려보내고, 체납된 환곡은 정퇴해 주고 올해의 환곡은 분수를 정하여 정퇴해 달라는 일 등은 모두 제주 목사가 장계(狀啓)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