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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 > 일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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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335 고문헌 제주(濟州)의 노인연(老人宴)을 받은 노인에 대한 가자(加資)와 이번에 노인직을 받은 사람으로서 가자해야 할 노인에 대한 가자를 모두 하비(下批)하고, 장본(狀本)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과 70세 이상으로서 해로(偕老)한 사람을 모두 구별하여 장계를 작성해서 아뢰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
334 고문헌 위유안핵순무시재 어사(慰諭按覈巡撫試才御史) 심낙수(沈樂洙)를 특별히 승진시켜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삼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폐막(弊瘼)은 편의에 따라 바로잡고, 창고를 설치하는 문제는 묘당에서 내게 물어 처리하게 하며, 제주도 유생(儒生)의 입격한 시권(試劵) 중 수석을 차지한 사람이 지은 것을 외각(外閣 교서관)에서 인쇄하여 보내게 하고, 무과(武科)에 응시한 사람 중 급제(及第) 자격을 준 사람과 문과(文科)에서 입격한 사람은 내년 봄에 올려보내 동시에 창방(唱榜)할 수 있도록 하며, 전(前) 목사(牧使) 이철운(李喆運)은 의금부로 잡아오거든 엄히 형추(刑推)하여 공초(供招)를 받은 뒤에 법에 따라 엄히 다스리고, 수령의 학대를 도와 백성을 못살게 군 장교와 아전은 곤장을 쳐서 엄히 다스리며, 양지온(梁之蘊)은 더욱더 엄히 처리하고, 구렁을 전전하다 죽어 간 사람이 가장 많은 곳에 고아와 과부를 모아 놓고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며, 3개 읍(邑)의 기민(饑民)은 마음을 다해 구제하고, 안핵(按覈)에 대한 장본(狀本)은 시원임 대신(時原任大臣)에게 돌려가며 보여 주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
333 고문헌 제주 판관(濟州判官)은 간간이 시종(侍從)으로 융통하여 차출해서 보내고 대정현(大靜縣)과 정의현(旌義縣) 두 읍의 수령도 지벌과 장래가 있는 사람으로 때때로 가려 차임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
332 고문헌 제주(濟州) 3개 읍의 식생활이 어려운 백성을 유의하여 구제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
331 고문헌 논(論), 책(策), 시(詩), 부(賦), 명(銘), 송(頌) 등 각 시제(試題)로 시취(試取)한 제주(濟州)의 유생(儒生) 중에서 수석을 차지한 사람과 81세로 입격(入格)한 사람에게는 전시(殿試)에 곧바로 응시할 자격을 주고 그 나머지의 입격한 유생에게는 시상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
330 고문헌 정의(旌義)의 고(故) 학생(學生) 오흥태(吳興泰)와 제주(濟州)의 고 효자(孝子) 박계곤(朴繼昆)에게는 정려(旌閭)의 은전을 특별히 시행하고, 박계곤의 손자 박중환(朴重煥)은 부장(部將)에 단부(單付)하고 천거한 인재 중 정의의 전(前) 좌랑(佐郞) 강성익(姜聖翊)은 병조 낭청에 감별하여 녹용(錄用)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
329 고문헌 시수(時囚) 이철운(李喆運)의 일은 대신의 의견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
328 고문헌 제주(濟州) 3개 읍의 수령에 대해서는 앞으로 성적을 고과(考課)하여 출척(黜陟)을 특별히 행하고, 본도(本島) 사람 이형수(李亨秀) 등에 대해서는 해당 목사에게 실제 행적을 상세히 물어 수용(收用)하되 삼기(三歧)에 대해 등급을 나누어 논열(論列)하여 장계로 보고하게 하고 장계가 올라오거든 내게 물어 처리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
327 고문헌 시수(時囚) 강봉서(姜鳳瑞)는 초기(草記)로 의처(議處)하고 조율(照律)하며 판의금부사 홍양호(洪良浩)는 월봉(越俸) 1등(等)에 처하고 지의금부사 민종현(閔鍾顯)과 동지의금부사 이한풍(李漢豐)ㆍ유의(柳誼)는 엄하게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
326 고문헌 제주 3개 읍의 맥환(麥還)은 분수(分數)하여 기한을 물려서 바치게 하고 강진(康津)과 해남(海南)의 곡물을 섬 안으로 이전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신이 알맞게 헤아려서 떼어 주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3
325 고문헌 제주 목사 심낙수(沈樂洙)가 장계하여 제주도의 세 고을이 풍재(風災)를 당한 상황을 진달하고, 이어서 절미(折米) 2만여 섬을 배로 수송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전라 감사에게 연읍(沿邑)의 곡식 1만 섬을 구획(區劃)하라고 명하고, 이어서 신임 목사 이우현(李禹鉉)에게 5000섬을 10월까지 영운(領運)하며, 대내(大內)에서 내리는 진휼 물자는 본도의 정기적인 부세(賦稅)와 공화(公貨)로 5000포(包)를 채우라고 명하였다. 초봄 이후에 정해진 규식 외에 별도로 한 차례 더 순행하여 넉넉히 음식을 먹여 주라고 명하였다. 또 감사에게 연읍의 백성과 선부(船夫)를 특별히 보살펴 주고 본도(本島)에서 어공(御供)으로 바치는 물건 및 경사(京司)에 바치는 여러 물종을 천신(薦新)에 사용하는 것 외에는 내년 보릿가을까지 감하며, 목사의 행차에 향축을 보내어 제사를 행하게 한 뒤에 배를 출발시키라고 신칙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
324 고문헌 전 제주 목사 심낙수(沈樂洙)를 추고(推考)하였다. 제주에서 재실리(災實里)로 등급을 나누는 것은 장계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고, 올해의 환곡 중 우심재리(尤甚災里)에는 10분의 9를, 지차리(之次里)에는 3분의 2를, 초실리(稍實里)에는 절반을 정퇴하며, 번(番)이 면제된 군관의 신역(身役)은 절반을 정퇴하고, 노비(奴婢)의 신공미(身貢米)와 남정(男丁)의 대동미(大同米)는 절반을 탕감하며, 군병의 조련(操鍊)은 정지하고, 노비를 추쇄하고 빚을 징수하는 것을 막아 주며, 영읍(營邑)의 수미(需米)는 대략 거두라고 명하였다. 이어 노약자(老弱者)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부류를 각 고을에 나누어 보내 관청 건물이나 토굴(土窟)에서 머물게 허락하고, 우심재리의 빌어먹는 사람 중에 가호(家戶)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민을 뽑는 데에 들어가지 못한 자에게도 이번 10월 초부터 인원수를 헤아려 환곡을 나누어 주어 우선적으로 구제하고, 부유한 백성의 남는 곡물을 통장(統長)에게 나누어 주어 보태 쓰게 하는 일도 모두 시행하게 하였다. 또 신임 목사 이우현(李禹鉉)은 선운(船運)해 간 것 및 이미 구획(區劃)한 것 이외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도신과 상의하여 곡물을 더 청하라고 유시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