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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타스알파] [신간산책] '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

  • 2025-11-13
  • 조회 7
원문기사
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82320

기록의 시대에 기록의 뿌리를 묻다
기록의 시대, AI와 디지털 이미지로 넘쳐나는 오늘, 300년 전 붓으로 남긴 한 권의 그림
기록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다시 묻는다.

2025. 11. 12.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카메라로, 인공지능으로 끊임없이 기록한다. 그러나 기록의 뿌리는 사람과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 기억하려는 의지에서 시작된다. '탐라순력도'는 그 마음의 원형인 기억과 관찰, 사람을 향한 시선을 되살린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인 1702년 (숙종 28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제주 목사로 부임해 섬 전역을 순력 했다. 군사와 물자를 점검하고, 진상할 감귤과 말을 준비하고, 해녀의 물질과 제주의 토속 신앙을 살피고, 과거 시험을 열고, 노인을 위한 잔치를 주관하는 등 분주한 일 년을 보냈다. 그의 여정은 백성의 삶을 살피고, 행정과 제도를 점검하며, 자연의 질서를 기록하는 길이었다. 그 여정의 결과가 바로 '탐라순력도'다.

 

이형상은 화공 김남길에게 제주도 각 고을을 순력한 내용과 행사 장면 등을 41폭의 채색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총 43면인 이 화첩은 제주도 지도인 〈한라장촉〉 1면과 순력 및 행사 장면 39면, 그리고 제주도를 떠나는 장면을 그린 〈호연금서〉 1면과 서문 2면으로 구성됐다.

 

'탐라순력도'는 18세기 초 제주도의 지리와 풍물, 경관 등 자세한 시각 정보를 담고 있다. 더불어 '순력도'라는 이름의 기록화로는 거의 유일하게 현존하는 자료이다. 이는 이 화첩이 단순한 회화 작품을 넘어 오늘날에도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사료로 평가되는 이유다.

 

기록화 기반 역사 그림책의 탄생

미술사학자 윤민용은 이 오래된 화첩을 다시 꺼내어, 묻힌 기록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가를 묻고자 했다. 붓으로 남긴 300년 전의 기록을 다시 펼치는 일은, 결국 기억을 이어 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는 그렇게 과거의 기록을 통해 현재의 시선과 미래의 질문을 이어 주는 역사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는 그 오래된 기록을 오늘날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구성한 '기록화 기반 역사 그림책'이다. 20개의 주요 원본 그림을 선별해 시간의 흐름에 맞춰 엮었다. 독자의 몰입을 돕기 위해 기록의 주체인 이형상을 1인칭 화자로 설정해 서사를 이끈다. 제주 소년 개똥이와 이형상의 반려견 삽사리 등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림과 이야기, 해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도록 구성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샤샤미우는 수묵의 질감과 현대적 색감을 결합해 '탐라순력도' 원본에는 없는 제주목 관아를 비롯, 원본 속 특징적인 사물과 생활 도구를 고증, 재현해 냈다.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는 마치 300년 전 제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그림 속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책의 말미에는 본문에서 다루지 못했던 역사나 인물, 인문지리 등의 배경 지식을 더해 독자가 감상-탐구-확장의 독서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표지 재킷은 원작 화첩의 43면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대형 포스터 형식으로 제작했다. 독자는 책을 읽는 순간뿐 아니라, 재킷을 펼쳐두고 작품 전체의 구성과 작가의 시선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QR 코드를 통해 고해상도 이미지를 디지털로 감상할 수 있어, 종이와 화면을 오가며 확장된 예술적 경험을 누릴 수 있다.

 

'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는 18세기 기록화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와 감성으로 되살린 기록화 기반의 역사 그림책이다. 옛 그림을 보는 일은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라, 기억의 뿌리를 다시 묻고, 미래의 기록을 준비하는 일임을 이 책은 잔잔하지만 단단하게 전한다. (윤민용 저자, 샤샤미우 그림/만화, 봄볕,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