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물의 역사 기록, 미래 위한 것
-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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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허벅부터 간이수도·통합상수도 발전
'제주 물 100년사'를 집필하며
고기원 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연구소장
2025. 11. 13. 제민일보(김영호 기자)

고기원 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연구소장은 13일 제민일보 특별강연에서 "수자원 개발사는 시작할 수 있지만, 완벽하게 정리된 한 권의 책으로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라며 "역사 기록은 항상 진행형이고, 새로운 자료가 나올 때마다 다시 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제민일보와 제주도가 추진 중인 '제주 물 100년사'는 정식 제목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탐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에 이르는 물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100년사'라는 기간을 고정해 부르기 어려운 이유에서다.
편찬 작업은 2004년 제민일보 '제주도 수자원 개발사' 연재, 2012년 제주연구원 '제주 상수도 50년' 이후 10여년 만에 이뤄지는 전면 재정리다. 탐라국 유적 발굴로 확인된 우물과 용수 이용 방식부터 통합상수도 체제까지 제주 물 이용 전반을 4편 18장으로 묶었다.
고 소장은 "제주의 물을 이해하려면 지질을 먼저 봐야 한다"며 잘못 알려진 '비양도 탄생 1000년설'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고려사에 기록된 1002년·1007년 화산 활동이 비양도와 연결돼 왔지만, 지질학적 흔적이 없어 최근 연대 분석으로 2만6000년 전 형성이 유력해졌다는 설명이다.
서귀포 수력발전소 관련 오해도 바로잡았다. 한국전력 전력사에는 '모슬포 비행장 전력 공급을 위한 시설'로 기록돼 있으나, 실제 생산량은 냉동고 한 곳을 돌릴 수준에 불과했다. 또 물허벅의 기원 역시 확정하지 못한 채 남았다. 각종 지리지에는 '목통으로 물을 운반했다'는 기록이 반복돼 토기 물허벅이 언제 일반화됐는지 단언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고 소장은 "검증되지 않은 구전이 사실처럼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문헌과 유물 간 간극이 커 섣부른 결론을 피했다"고 말했다.
이번 편찬 과정에서는 일제강점기 '정방 간이수도'로 알려졌던 시설이 실제로는 '우면간이수도'였다는 사실, 조선식산은행 차입 문건과 상수도 운영 규약 등 새로운 사료도 확인됐다. 어승생저수지 초기 함몰 사고를 보고한 문서와 박정희 대통령 현장 지시문, 광령·수산저수지 도수로 기록 등도 발굴됐다.
제주의 물 시대 구분도 다시 정리됐다. 물허벅과 용천수에 의존하던 시대, 간이수도 등장기, 시·군 상수도 확충기, 2006년 이후 통합상수도 체제로 이어지는 네 구간이다.
고 소장은 "제주가 1950년대부터 30여년 만에 상수도 문제를 해결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며 "동시에 1970년대 이후 지하수 개발이 늘면서 보전·이용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됐다"고 향후 과제를 짚었다.
이어 "수자원 법제, 개발 허가, 보호구역 지정 등 오늘의 행정 판단 하나하나가 훗날 수자원사의 한 장면이 된다"며 "기록을 쓴다는 것은 결국 미래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