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 지역언론이 주목한 제주 ‘여성 이장’
-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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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소리, 제주 내 ‘여성 대표성 강화’ 움직임 포착
제주MBC 여성 이장 이야기로 사회 참여 현실 짚어
“마을 공동체에서 여성 대표성 높아져야”
2025. 11. 13. 미디어오늘(윤유경 기자)

▲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강복순 어촌계장. 제주MBC 유튜브 채널 젬비씨 '여다의 섬에 별일이 생겼다,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1부' 영상 갈무리.
“반장, 부반장, 회장 다 못 해봤지만 마을의 일꾼인 내가 바로 이장이다!”(제주MBC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 중)
제주도 172개 마을에는 단 세 명의 ‘여성’ 이장들이 있다. 제주 여성들은 지역 내에서 경제활동을 도맡고 있지만, 정치나 행정, 사회단체 참여율은 낮다. 특히 마을 공동체에서는 여전한 가부장제 관행으로 여성들이 중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일상화돼 거부할 수 없는 남성 우월 풍습’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대표성 강화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이에 제주 지역언론에서는 지역 내 여성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지난 2월 창간 21주년과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제주여민회와 함께한 기획 ‘성평등한 일상의 꿈’을 보도했다. 일상 속에서 여성의 참여와 대표성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다룬 보도다. 제주MBC도 지난 6일 2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 방송을 시작해 여성 사회참여의 현실을 되짚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이 리더로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시작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공동체’에서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나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 제도적 뒷받침 필요
제주의소리는 제주 내에서 ‘성평등한 일상’을 찾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주목했다. 대표적 사례는 제주여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제주YWCA가 사업단을 이뤄 진행하고 하고 있는 ‘제주 성평등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이들 단체는 마을부녀회가 성평등 마을규약을 확정해 마을총회에 상정하고 이를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각 마을에서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은 일상 속 성평등 내용을 담은 연극을 보며 함께 웃고 울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자유롭게 나눈다. 리더십과 성인지감수성에 관한 강의도 듣고, 라운드테이블, 토론, 모의총회 참여의 경험도 한다.
마을 규약인 ‘향약’ 개정은 최우선 과제다. ‘마을의 세대주만 이장에 입후보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남편과 사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여성은 이장 선거에 도전도 할 수 없는 등 향약에는 차별적 내용이 많았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는 성평등마을 사업을 통해 마을규약을 개정했다. 전에는 없었던 운영위원회 위촉직 남녀 50%로 구성, 연령·성별 등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존중할 의무,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지 않고 발언의 기회를 균등하게 가질 권리 등의 내용이 개정을 통해 명시됐다.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느라 정작 마을총회에 참여하지 못했던 부녀회원들도 문제제기를 통해 총회에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된 변화도 있다.

▲ 제주의소리와 인터뷰하는 양임복 동일2리 전 이장. 제주의소리 유튜브 채널 제리뉴스 '왜 여자 이장님은 거의 없을까? | “여성 이장이 나오지 않는 진짜 이유”' 영상 갈무리.
금악리 주민이자 부녀회장인 한경례(59)씨는 제주의소리에 “부녀회원들이 불편함은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는데 교육을 통해 ‘이게 불평등이었구나’라고 느끼게 되고, 마을 운영에서 가부장적인 면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됐다”며 “성평등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5개 마을에서 성평등마을사업이 진행됐고 6개 마을의 규약이 변경됐다.
제주의소리는 올해 1월부로 선출된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1리의 고태숙 이장(62)과 2021년 퇴임한 대정읍 동일2이 양임복(59) 전 이장도 만났다. 언젠가 ‘이장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있던 고 이장은 ‘욕먹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에도 ‘욕먹을 때 먹더라도 잘했져 한마디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이장에 도전했다. 그는 특별한 업적을 남기기보단 고령층이 대부분인 지역주민들이 한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신명난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양 전 이장은 더 많은 여성 이장이 나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제주 여성들이 집안이나 동네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요망지다. 남성보다 어디 하나 떨어지지 않는데, 리더 자리에는 왜 이렇게 나서지 않을까 아쉬움이 든다”며 ‘나서는 여성’에 대해 사회 인식 개선뿐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주의소리와 인터뷰하는 고태숙 세화1리 이장. 제주의소리 유튜브 채널 제리뉴스 '왜 여자 이장님은 거의 없을까? | “여성 이장이 나오지 않는 진짜 이유”' 영상 갈무리.
보도를 기획한 문준영 제주의소리 기자는 11일 “제주 농촌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습속, 여성이 사회적 리더로 성장하기 힘든 환경을 다루고자 했다”며 “독자들에게 성차별이 거시적이고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운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임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마을 공동체에서 여성이 보조자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을 살펴보자는 목표가 컸다. 문 기자는 “제주의 읍면지역 커뮤니티는 과거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려는 관성, 타지역에서 온 이주민의 급증, 각종 개발 등으로 여러 가치관이 혼재해 있는 상태”라며 “다양한 지향과 가치들이 교차하면서 크게 변화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보조자에 불과한 순간들이 많다는 점을 들여다 보려 했다”고 말했다.
이장은 아무나 하나, 우리니까 하지!
제주MBC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는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신양 어촌계에서 90년 만에 나온 여성 어촌계장 강복순(62)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해녀는 제주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지만, 제주 지역 어촌계장 102명 중 여성은 22명에 불과하다. 강씨는 “해녀의 삶을 살고 있는 삼춘들에게 좀 더 편안한 삶을 조성해주기 위해” 어촌계장에 도전했다. 삼춘들은 그간 남성 계장들에게는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편하게 말하고,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한다.

▲ 제주MBC 특집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 포스터. 사진=제주MBC 제공.
연출을 맡은 김지은 제주MBC PD는 같은 날 “해녀는 제주에서 가장 조직력 있는 공동체다. 목숨 걸고 바다에서 작업하다 보니 항상 공동체로 움직여야 하고 단독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며 “그런 조직 안에서 의견을 모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해녀들의 권리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람이 같이 물질을 하고 동고동락하는 여성이 되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오애순’(아이유 분)의 이야기도 김 PD가 이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드라마는 오애순이 제주에서 처음 여성 어촌계장으로 당선되며 활약하는 모습을 그렸다. 김 PD는 “애순이의 삶은 제주 사람이라면 다 공감하는 이야기다. 거의 80%의 어촌계원이 해녀들인데, 어촌계장은 다 남자들이 맡아왔다”며 “아직 제주 곳곳에는 애순이가 있다. ‘제주도의 이야기’라고만 할게 아니라 바꿔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제주MBC 다큐멘터리에도 성평등마을 사업 교육 현장이 담겼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부녀회에서 진행된 교육에서 부녀회원들은 ‘회의’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공유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경험이 필요했던 부녀회원들은 회의를 진행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했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의 전국 최연소 여성 이장 김유솔씨의 이야기도 담겼다. 김씨는 이장을 “가까이에서 넘어지지 않게 잡아줄 수 있는 난간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더라도,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마냥 무너지지 않게끔 버틸 수 있게 하는 ‘지지대’가 되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 성평등마을 사업 교육 현장. 제주MBC 유튜브 채널 젬비씨 '여다의 섬에 별일이 생겼다,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 - 1부' 영상 갈무리.
공론장에 참여하는 경험은 자연스레 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게끔 만든다. 정은숙 제주여민회 대표는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성은 계속해서 결정하는 위치에 있고 어떤 성은 결정은 전혀 하지 못하고 뒷받침하는 위치에만 있게될 때, 그들의 욕구와 의견 반영은 성사되기 힘들다”며 “지역 소멸에는 너무 많은 이유가 있지만, 만약 우리 마을이 내가 살기에 불편함이 없고 충분히 내 의견들이 반영된다면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마을에서 살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3일 방송되는 2부에서는 유쾌하게 마을의 일들을 해결해가는 여성 이장들의 ‘슬기로운 이장생활’을 초밀착해 보여줄 예정이다.
지역언론은 모두 정치와 행정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 기자는 “내년 6월이 지방선거다. 제주에서도 여성 선출직 비율이 남성과 비교해 매우 적다”며 “근본적으로는 여성이 리더로서 경험하고 단련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계기가 부족하다는 배경이 있다. 이번 기획에서 다뤘던 마을 이장, 공동체 리더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PD도 “정책을 만드는 도의원들이나 행정을 움직이는 공무원들의 여성 비율이 낮다보니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지 못한다”며 “마을 공동체의 여성 대표성도 높아져야 하지만 정치나 행정에 있어서도 대표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