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매일] 돌아가지 못한 혹고니 그리고 하얀 꿈
-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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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⑦ 이주민 정책
“이주민, 숱한 철새처럼 저마다 사연 간직한 사람들”
원주민과 동화돼야 제주가치 빛나…지원책 강화돼야
2025. 11. 18. 제주매일(김진규 기자)
| 앉아서 세계를 여행하고 몇 번의 손가락 터치로 원하는 음식이 식탁 앞에 와 있는 시대다. 편리하고 풍요로워진 생활 속에서도 무엇인지 모를 헛헛함이 존재한다. ‘풍요속 결핍’, 인문학적 사유와 따뜻한 교감이 필요하다. 제주창조신화의 주인공 설문대할망, 얼기설기 쌓아 태풍에도 끄떡없는 돌담 등 제주 곳곳에는 선인들의 지혜와 그들이 남긴 메시지가 고스란히 남았다. ㈜제주매일은 도민 모두가 행복한 문화·복지도시 실현을 위해 제주의 역사와 제주어, 제주학교의 역사 등 인문학 활성화사업 프로그램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면서 삶을 나누고 배움으로 이어가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전하는 제주인문학을 지면에 소개해 독자들과 더 오래, 더 깊이 공유한고자 한다. [편집자주] |

김완병 박사(제주학연구센터장)
제주에 내려앉았던 혹고니가 일 년째 머물고 있다. 작년 12월 구좌읍 하도리 철새도래지에 어린 혹고니 두 마리가 방문했다. 보통 고니류는 가족 단위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어미하고 헤어졌다. 어미도 없고 낯선 환경인지라 내내 불안하게 지내고 있다. 번식지에서 날아올라 남쪽으로 오다가 비행을 아름다운 풍광에 그만 매료되었던 것일까. 늦게라도 어미가 합류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녀석들은 어미가 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었다. 끝내 어미는 오지 않았고 둘은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철새들처럼 제주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에 떠날 작정이었다.
점점 제주가 낯설지 않았다. 정작 떠나야 할 때를 놓치는 바람에 방심한 탓일까. 아뿔싸, 올봄에 한 녀석이 사라졌다. 홀로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혹시 무슨 변고라도 생길 것 같은 불길함이 연속이었다. 망망대해 하얀 돛단배처럼 외로운 모습에 몇 번이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워낙 몸집이 커서 맹금류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을 보내더니 꼬박 일 년을 버텼다. 어느새 회갈색의 외투도 하얀색으로 갈아입고 부리도 제법 붉은색으로 변했다. 부리 기부의 혹도 튀어나왔다. 언젠가 어미와 동생과 재회라도 할 듯 씩씩한 나날을 보내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대신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동네 여행도 익숙해졌다. 하도리 인근의 종달리와 시흥리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성산읍 오조리에서도 올레꾼을 만나기도 했다.

제주를 방문한 철새들이 한데 어울려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완병]
혹고니가 제주를 처음 방문했던 때는 2008년 6월이었으며 네 마리가 한경면 용수리를 찾았다. 이후 2009년 1월과 11월에도 용수리 저수지를 재방문했고 2012년 12월에는 구좌읍 월정리 그리고 2013년 4월에는 대정읍 모슬포항에도 도래한 적이 있다. 겨울철새의 이동 경로와 이동 시기는 일정한 편이어서 혹 때를 놓치더라도 제주를 떠나는 게 관례이다. 지난 2002년 11월 제주에 왔던 독수리 무리가 번식지로 돌아가지 못한 사례처럼 혹고니도 이례적이다. 현재까지 관찰되는 독수리는 최소 한 마리이지만 제주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 한때 희귀 철새였던 쇠물닭이나 검은이마직박구리처럼 아예 제주에 정착하지 못했지만 독수리와 혹고니는 제주살이에 큰 지장이 없어 보인다.
숱한 철새들이 섬에 오간 것처럼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도 제주에 뿌리를 내렸거나 눌러앉은 사람들이 많다. 혹고니에게는 큰 혜택을 제공하지 못했지만 제주도에서는 이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제주 이주는 경제 이주, 문화 이주, 청년 이주, 정착 이주, 귀촌 이주 등 여러 형태로 다변화되고 있다. 이주민들의 삶이 제주 사람들과 동화되면서 제주의 가치가 더 빛나고 있다. 제주 이주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마을의 순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와 지원책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제주에서는 깃털이 유독 하얀 저어새와 중대백로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겨울을 나는 모습을 흔하게 접한다. 저어새가 홀로 있을 때도 백로들이 갯벌에서 함께 어울려주고 갈대밭에서는 노란 우산이 돼주기도 한다. 올해 7월과 10월에 각각 태어난 흰 직박구리와 흰 까치의 행운처럼 온통 하얀 혹고니 그리고 하얀 꿈을 꾸는 이주민의 삶도 평온하길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