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큰 인기를 끈 드라마에도 나오는 제주도 해녀는 '육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존재다. 강인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억척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지난 10월 14일, 제주 월정리에서 김은아 님을 만나 해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바다가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도 해녀들은 물질을 이어간다
- 반갑습니다. 먼저 김은아 님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해녀로 일한 지 이제 8년 차 되는 월정리 막내 해녀 김은아입니다. 제주도 토박이고, 구좌읍 월정리에서 해녀로 물질하고 농사도 지어요. '구좌 당근'이라고 유명한데, 당근이랑 토종 농사도 조금 하고 있습니다."
- 김은아 님은 어떤 계기로 해녀로 일하게 되셨나요?
"어머니가 해녀 일을 하셔서 물질이 낯설지는 않았어요. 원래 제주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가족들이 편찮아지면서 돌볼 사람이 없어서 고향 월정리로 돌아왔고, 먹고살려고 해녀 일을 시작한 거죠.
제주 농촌에는 '보리 방학'이라고 해서 보리가 나는 시기에 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수확을 돕는 풍습이 있어요. 여기서는 '우미 방학'이라고 해서, 봄철 우미(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시기에 이틀, 사흘 방학을 하면 제주시내에 유학 간 학생들도 고향에 와서 우미 작업을 해요. 아이부터 노인까지 마을 전체가 나와 우미를 채취하고 나르고 말리던 모습이 정말 진풍경이었어요.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그런데 이제 월정리에서는 우미가 나지 않아요. 한 4~5년 전부터 여러 오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해녀들의 일터도 점점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요."
- 물질이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하루 일과를 대략 말씀해주신다면 어떻게 되시나요?
"오전 7시부터 물질을 한다고 하면 6시에 불턱(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가기 전 머무는 쉼터)에 나와요.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둘러앉아 사는 이야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장작불을 피워 몸을 녹이기도 하고요.
불턱에서 삼춘(제주에서 성별 구분 없이 어르신을 부르는 말)들이 파도와 바다 상태를 살피면서, 물질 가능 여부를 그 자리에서 의논해 판단해요. 제주도는 가부장적인 면이 강하지만 물질만큼은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공동체가 자주적으로 결정합니다. 경제적으로 일정한 수입도 생기니 독립성이 생기고요.
바다가 괜찮겠다 싶으면 물질을 시작해요. 물건(해산물)이 얼마나 있는지, 파도가 거칠지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4~5시간 정도 물질하고, 정리하는 데 두어 시간이 걸려요. 그다음 저는 밭으로 가고요. 연세 많은 삼춘들은 병원에 가거나 집에서 쉬어야 해요. 물질을 하고 나면 정말 몸이 많이 힘듭니다."
준비 과정만큼이나 실제 물질 과정은 더 치열하다
▲물질하기 전에 바다로 들어가려는 해녀들 ⓒ 김은아
- 물질 작업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아무 때나 물질하는 게 아니라 물때가 있어요. 보름마다 한 달에 두 주기, 한 주기에 7일씩인데, 기상 상황 때문에 실제로 7일 다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입수 전에 불턱에서 고무옷으로 갈아입고 차분히 준비해요. 삼춘들은 물에 들 때 서두르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세요. 고무옷을 입고 연철(잠수용 납덩어리), 오리발, 수경, 호멩이(뾰족한 갈고리 형태의 해녀용 호미), 테왁(뜨는 장비 겸 채취물 바구니)을 챙겨요.
물질할 때는 하루에 수백 번 오르락내리락하며 한숨에 2분 정도 잠수해요. 수면 위로 올라오면 참았던 숨을 내쉬며 숨비소리를 내고, 기운이 빠지니까 테왁을 끌어안고 잠깐 쉬죠. 아주 중요한 과정이에요. 물질 잘하는 분들을 상군이라 하는데, 저는 하군도 못 되는 '똥군'이에요. 상군 삼춘들이 두 번 들어갈 때 저는 서너 번 올라오는 것 같아요. 숨이 짧아 깊은 데는 못 가고 얕은 데서 물질하죠.
대부분 테왁을 다 채우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욕심내면 안 돼요. '바닷속에서는 욕심 부리지 말라'고 늘 말씀하세요. 소라 하나 더 캐려다가 큰일 난다고요. 파도가 세지면 삼춘들이 하나둘 뭍으로 나가고, 저도 따라 나가요. 급하면 신호를 보내 물질을 그만하기도 하고요.
바다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해녀들은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고, 들어가는 시간·나오는 시간도 공동체가 함께 결정합니다. 안전을 위한 문화죠."
- 육지 사람들에게 숨비소리는 그저 신비롭게만 들리지만 거기엔 해녀들의 애환과 고통이 깃들어 있다더군요.
"바다 깊이 들어갈수록 수압이 세지잖아요. 나오면 압력이 낮아지니까 그 차이 때문에 숨병(잠수병)이 생겨요. 높은 수압 때문에 질소가 피에 녹아들고, 수면 위로 올라오면 이 질소가 바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체내를 떠돌면서 혈액 속에 쌓이는데, 이것 때문에 몸이 안 좋아지는 거죠.
두통, 구토, 관절통을 일으키고 심하면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해요. 저도 산소가 부족할 때 몸이 굳는 느낌이 날 때가 있어요. 특히 겨울철에 심하고요. 최근 고압산소치료센터가 여러 곳 생겨 해녀들에게 무료 치료를 제공해요. 치료를 받고 온 삼춘들은 한결 나아졌다고 하세요."
- 숨병 말고도 여러 질병이나 사고를 겪기도 하실 것 같아요. 해녀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노동안전보건상의 어려움은 어떤 게 있을까요?
"파도가 매우 세면 말 그대로 휩쓸려가요. 바위나 배에 부딪혀 다치는 일도 흔하고, 성게나 뿔소라에 찔리거나 긁히기도 해요. 압력 때문에 청력이 손상돼 난청이 많고요. 삼춘들 목소리가 큰 이유죠.
파도의 저항을 견디며 물질하다 보면 온몸이 아파요. 미끄러져 다치기도 하고요. '젊은 삼춘'이라고 해도 60대 후반이신데, 그런 분들이 소라가 든 테왁을 들고 오시는 거예요.
뭍에 나와 50킬로그램 넘는 물건을 짊어지고 100미터 넘게 걸어와야 하고요. 그게 해녀의 일이에요. 남편이나 남자 가족이 도와줄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아요."
해녀에게 바다는 단순한 일터를 넘어 생존 공간이다
- 월정리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이름난 곳이라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잖아요. 또 김은아 님께는 다른 무엇보다 삶의 터전이고요. 그 바다에 오폐수가 방류된다고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월정리 근처에 하수처리장이 있다는 걸 몰라요. 우리가 물질하는 바다에 더러운 물이 버려지는 거예요. 공사가 시작된 1997년에는 월정리가 먹고살기 힘들었고, 관에서 한다고 하니 믿은 것도 있었고요.
그 뒤로 제주 동부의 인구 증가와 관광객 증가를 이유로 계속 증설해왔어요. 처음 공사를 막으려고 보초를 섰어요. 어느 날 밤 공사 차량이 들어오길래 해녀회장님께 전화했더니 마을에 쫙 연락이 갔나 봐요. 오후 10시에 해녀 삼춘들이 파자마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총출동했어요. 정말 뭉클했죠.
최근 법원에서도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고요.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제주도는 관광객을 계속 유치해야 하니 힘없고 작은 마을은 희생돼도 된다는 말 같았어요. 이 불평등이 너무 크게 느껴져 싸워왔지만, 사실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죠.
물질을 처음 시작한 날, 하수처리장 바로 근처였는데 바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물질해온 몇 년 동안도 바다가 변해가는 걸 알 수 있어요. 오폐수뿐 아니라 기후위기도 영향이 있겠죠. 하지만 월정리에 많던 우미는 다 사라졌어요. 삼춘들이 '나보다 바다가 먼저 죽을 것 같다'고 하세요."
- 마지막으로 <일터>를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시겠어요.
"해녀가 강인해 보이지만 긍정적인 이미지만 있는 건 아니에요. '억척스럽다'는 건 비옥하지 않은 땅과 거친 바다에서 배고프지 않으려고 살아온 맥락이 있는 거죠.
제주도에는 8월 금채기가 있어요. 산란기 소라·문어를 보호하려고 채취를 금지하는 기간이에요. 그 시기에 해녀 삼춘들이 바다를 지키는데, 관광객이나 다이버들과 마찰을 빚기도 해요. 삼춘들 목소리가 크고 억양이 세서 화내는 것처럼 들릴 수 있고요.
'바다가 해녀들 거예요?' 하는데, 바다를 보호하려는 거니까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우리 해녀들은 하루하루 바다가 죽어가는 걸 몸으로 느껴요. 기후위기가 곧 삶의 위기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