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2 |
고문헌 |
제주 3개 읍의 맥환(麥還)은 분수(分數)하여 기한을 물려서 바치게 하고 강진(康津)과 해남(海南)의 곡물을 섬 안으로 이전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신이 알맞게 헤아려서 떼어 주게 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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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18년 (1794) |
146 |
2971 |
고문헌 |
제주 목사 이우현(李禹鉉)이 본도 3개 읍(邑)의 진휼을 마치고 급히 장계한 데 대해, 모환(麰還) 대신으로 거두는 양태(凉臺 갓양태)와 해곽(海藿 미역)은 장계에서 청한 대로 정퇴(停退)해 주고, 전에 내린 제주 목사를 시상하라는 전지는 삭제하며, 원납인(願納人)인 전 현감 고한록(高漢祿)은 대정 현감(大靜縣監)으로 특별히 차임하고 이어 군수의 이력(履歷)을 쓰게 하며, 홍삼필(洪三弼)과 양성범(梁聖範)은 순장(巡將)으로 올려 차출하라고 명하고, 이어 정리곡(整理穀)을 양태와 해곽으로 대신 징수하는 것은 일절 거론하지 말아서 모든 백성에게 자궁(慈宮)의 은혜가 널리 미친 바를 알게 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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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19년 (1795) |
157 |
2970 |
고문헌 |
전 정언 변경우(邊景祐)가 상소하여 제주(濟州)에 사창(社倉)을 설치하기를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려 도백과 목사를 시켜 이치를 따져 장계로 보고하게 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제주목(濟州牧)은 3개 읍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굶주려 죽은 자들을 제사 지내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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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19년 (1795) |
150 |
2969 |
고문헌 |
제주(濟州)의 치패선(致敗船)에 탔다가 익사한 사람들에게 휼전(恤典)을 제급(題給)하고, 이어 표류하는 사람들의 종적을 찾아서 보고하도록 신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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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0년 (1796) |
161 |
2968 |
고문헌 |
도목 정사에 대해 하비(下批)하였으며, 경원 부사 한광식(韓光植)을 개차하고 가자(加資)한 것은 도로 거두어들이지 말며, 전 남원 부사(南原府使) 박지원(朴知源)과 전 전생서 판관 윤광호(尹光濩)는 모두 잉임하며, 잉임한 정의 현감(旌義縣監) 이동환(李東煥)의 후임을 가려 차출하며, 전주 영장(全州營將)을 차출하여 경주 영장(慶州營將) 백동운(白東運)과 서로 자리를 바꾸어 부임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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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1년 (1797) |
171 |
2967 |
고문헌 |
대정 현감(大靜縣監) 김건수(金健修)를 개차(改差)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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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년 (1778) |
173 |
2966 |
고문헌 |
대정 현감(大靜縣監) 박필서(朴弼瑞)를 개차(改差)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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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4년 (1780) |
145 |
2965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 나아가 주강(晝講)을 행하고, 하직하는 수령과 변장(邊將)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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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6년 (1782) |
147 |
2964 |
고문헌 |
성정각에서 대신(大臣)과 금오(金吾)ㆍ형조ㆍ이조ㆍ병조의 소결 당상(疏決堂上)을 소견(召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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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6년 (1782) |
148 |
2963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大臣)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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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12년 (1788) |
147 |
2962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大臣)과 경재(卿宰)와 삼사(三司)를 소견하고, 판부사(判府事) 유언호(兪彦鎬)를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고 전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을 삭출(削黜)하고 이조 판서 송재경에게 견삭(譴削)의 벌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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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12년 (1788) |
156 |
2961 |
고문헌 |
성정각에서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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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12년 (1788) |
1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