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사 > 제주사일반

23971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6331 고문헌 내일 춘당대(春塘臺)에서 감제(柑製)를 설행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7
6330 고문헌 탐라(耽羅)로 배에 실어 보낼 곡물과 사서 보내는 곡물에 대해 전라 감사에게 묻고 형편에 따라 배로 운반한 뒤 장계로 보고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3
6329 고문헌 전라 감사 서정수(徐鼎修)가 탐라(耽羅)로 보내는 무곡(貿穀)을 다 실어 발송하였다고 급히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3
6328 고문헌 내탕전(內帑錢) 1만 민(緡)을 탐라(耽羅)에 별도로 내려 주어 진휼의 재원으로 삼게 하고, 이어 도신과 수신(守臣) 및 연읍(沿邑)의 수령을 신칙하여 해산물의 이익으로 무역하는 일을 착심(着心)하여 권장하게 하고 빈마(牝馬)를 육지에 헐값으로 내다 파는 일에 대해서도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하여금 직접 단속하게 하였다. 3개 읍의 권농(勸農)하는 정사에 대해 별도로 더 엄하게 신칙하게 하고, 이어 대내에서 내린 돈으로 호남에서 올해 바쳐야 할 상부(常賦)와 응공(應貢) 중에서 형편에 따라 제해 두었다가 곡물로 바꾸어 보내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4
6327 고문헌 호남 도신이 거론한 진도군(珍島郡)과 영암군(靈巖郡) 소안도(所安島)의 여섯 가지 폐단을 바로잡겠다는 장본(狀本)에 대해 비국이 회계(回啓)한 것은 모두 아뢴 대로 시행하게 하고, 진도 목장의 송전(松田) 명색은 혁파하고 소안도에서 궁방(宮房)에 바치는 것도 모두 호조에 세금으로 내고 그 나머지 토지에서 나오는 것은 섬사람들에게 내주라고 명하였다. 이어 전후로 아뢴 것에 대해, 도신으로 하여금 비답에서 하교한 것과 폐단을 바로잡은 사건을 써서 군아(郡衙), 목관(牧館), 도해(島廨)에 게판(揭板)하고 5년 동안 해마다 연말에 바로잡은 여러 조항의 이해(利害)를 조목조목 나열하여 보고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4
6326 고문헌 탐라(耽羅)의 도민(島民)을 육지로 내보내는 일은 제주 목사의 장계 내용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1
6325 고문헌 한성부가 탐라(耽羅)의 호구(戶口)와 백성 숫자를 올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4
6324 고문헌 나리포창(羅里舖倉)을 다시 설치하라고 명하고, 조진관(趙鎭寬)과 서용보(徐龍輔)를 구관 당상(句管堂上)으로 차임하고 이어서 서용보를 비변사 당상으로 차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3
6323 고문헌 재소(齋所)에서 대신(大臣)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3
6322 고문헌 나리포 구관 당상(羅里舖句管堂上) 서용보(徐龍輔)를 엄하게 추고하고 이어서 신칙하여 공무를 행하게 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4
6321 고문헌 호남의 연읍(沿邑) 중에 유고조(留庫條)의 조(租 벼)와 모(牟 밀)가 조금 넉넉한 곳에서 절미(折米)한 2000섬의 값을 받고 탐라(耽羅)에 떼어 주되 편리한 대로 운반해 들이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4
6320 고문헌 전라 감사 서정수(徐鼎修)와 제주 목사(濟州牧使) 유사모(柳師模)가, 별도로 내린 진휼 물자가 무사히 도착하였으며 섬 안 3개 읍의 모맥(牟麥 보리) 농사가 풍년이 들었다고 급히 장계한 데 대해, 유사모는 민정(民情)을 더욱 잘 살펴 다시 나에게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