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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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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제주사일반

23971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6247 고문헌 대사면(大赦免)을 행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4년 (1790) 8
6246 고문헌 양덕윤(梁德潤)에게 사실대로 공초를 받아 처결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5년 (1791) 9
6245 고문헌 구성부(龜城府)에 정배한 죄인 정존중(鄭存中)은 그대로 그 지역에 안치(安置)하고, 절도(絕島)에 찬배(竄配)한 죄인 박규순(朴奎淳)은 배소(配所)를 서북도(西北道)로 옮겨 정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8
6244 고문헌 호조 참판 이의직(李義直)이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9
6243 고문헌 행 부사직 이병정(李秉鼎)과 정범조(丁範祖)가 상소한 데 대해, 내가 상소를 가지고 있겠다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7
6242 고문헌 지평 유악주(兪岳柱)가 피혐 계사를 올린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8
6241 고문헌 선전관 양협(梁埉)ㆍ심유조(沈有祖)ㆍ이인달(李仁達)은 병조 판서로 하여금 교관(郊館)에서 개좌(開坐)하여 크게 위의(威儀)를 베풀고 곤(棍) 30도(度)를 엄하게 쳐서 섬에 충군(充軍)하게 하고, 이동선(李東善)ㆍ이주봉(李周鳳)ㆍ김준악(金峻岳)ㆍ유상두(柳相斗)ㆍ허빈(許彬)ㆍ김진정(金鎭鼎)ㆍ원영린(元永麟)ㆍ전우성(田遇聖)은 모두 엄하게 곤을 쳐 태거(汰去)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9
6240 고문헌 검교직각 서영보(徐榮輔)에게 유시(諭示)하여 고달도(古達島)의 선소(船所)에서 제사를 지낸 뒤 제주(濟州)로 가는 배가 곡식을 싣고 출발하거든 돌아오는 길에 연읍(沿邑)을 자세히 살핀 다음 보고 들은 것을 조정에 돌아온 후 일일이 보고하게 하고, 이어 삼남(三南)에 은택을 베풀라는 내용으로 어제 내린 전교는 가는 곳마다 효유(曉諭)하고 만일 시행했어야 하는데 아직 시행하지 못한 일 가운데 조정에 돌아올 때까지 지체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의견을 붙이고 사리에 맞게 논하여 속히 보고하라고 신칙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0
6239 고문헌 판의금부사 홍양호(洪良浩)를 삭직(削職)하고, 동지의금부사 이한풍(李漢豐)ㆍ이의필(李義弼)ㆍ김이익(金履翼)을 체차하고, 승지 김면주(金勉柱)ㆍ이조원(李肇源)ㆍ송민재(宋民載)를 파직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9
6238 고문헌 사간 이현도(李顯道)를 흑산도(黑山島)에 정배(定配)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
6237 고문헌 검교직각 이만수(李晩秀)와 남공철(南公轍)을 추자도(楸子島)에 정배(定配)하였다가 곧이어 용서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9
6236 고문헌 호남 암행 어사 정만석(鄭晩錫)이 복명하여, 중희당(重熙堂)에서 소견(召見)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