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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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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5894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7498 고문헌 격쟁인(擊錚人)들의 원정(原情)에 대한 별단을 판하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4년 (1790) 16
7497 고문헌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도목 정사(都目政事)를 행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4년 (1790) 16
7496 고문헌 조원순(趙元珣)에게 공초(供招)를 받아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5년 (1791) 20
7495 고문헌 대사헌 조종현(趙宗鉉), 집의 임도호(林道浩), 장령 박서원(朴瑞源)ㆍ정필조(鄭弼祚), 지평 한영규(韓永逵), 헌납 이경운(李庚運)을 추고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5년 (1791) 22
7494 고문헌 노인직(老人職)에 대해 하비(下批)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8
7493 고문헌 의금부는 시수(時囚) 이현민(李顯民)은 우선 풀어 주고, 전 충청 감사 박천형(朴天衡)은 교귀(交龜)하거든 잡아다 신문한 뒤에 조사해서 아뢰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20
7492 고문헌 희정당(熙政堂)에서 서울과 지방에서 올린 전최(殿最)를 열어 보았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9
7491 고문헌 100세 및 8, 9십 세 노인에게는 미육(米肉)을 세찬(歲饌)의 예대로 제급하고, 그중 100세 노인인 전 지사(知事) 이여상(李如尙)은 특별히 한 자급을 올려 주고 의자(衣資)를 넉넉히 지급하며, 문관, 음관(蔭官), 무관으로 도류(徒流)나 파삭(罷削) 이하의 죄명 및 사서(士庶)로서 도류나 경죄(輕罪)를 지은 사람은 모두 탕척(蕩滌)해 주며, 유생으로서 정거(停擧)된 자도 용서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20
7490 고문헌 중희당(重熙堂)에서 호남 구관 당상(湖南句管堂上) 서유린(徐有隣)을 소견하였다. 호남의 곡물 1만 섬을 차원(差員)을 정하여 제주목(濟州牧)으로 이전(移轉)해 주고, 배가 출발하는 곳과 도착할 곳에서는 모두 해신(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되 제문은 직접 지어 주겠고, 제주목에서 바쳐야 할 삭선(朔饍)과 방물(方物)은 보릿가을까지 정지하고, 경각사(京各司)에 바치는 것과 각 시(寺)의 노비 신공미(身貢米) 당년조는 모두 탕감해 주고, 영운(領運)하여 올라온 백성에게는 옷과 양식을 지급하여 내려보내고, 체납된 환곡은 정퇴해 주고 올해의 환곡은 분수를 정하여 정퇴해 달라는 일 등은 모두 제주 목사가 장계(狀啓)에서 청한 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9
7489 고문헌 한성부가 금년의 호구와 백성 숫자를 올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17
7488 고문헌 제주목(濟州牧)이 올해 목장에 방목하고 있는 말의 실제 숫자를 올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20
7487 고문헌 전라 감사 권엄(權)이 제주(濟州)의 공마(貢馬)를 몰고 올라갈 사람에 대해 정식을 만들어 거행하는 일을 급히 장계로 보고한 데 대해, 묘당에서 초기로 회계(回啓)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