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리 불미공예

덕수리 불미공예는 불미(풀무의 제주어)로 바람을 일으켜 쇠를 달구거나 녹여 생활 도구나 농기구를 만드는 주물공예를 말한다.

©보습 주조

덕수리 불미공예는 불미(풀무의 제주어)로 바람을 일으켜 쇠를 달구거나 녹여 솥이나 보습 등 생활 도구나 농기구를 만드는 주물공예를 말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에서 전승되는 덕수리 불미공예가 1986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안덕면 덕수리 불미공예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덕수리가 지난 300년간 품질 좋은 솥이나 보습 등을 생산해서 제주도 전역에 공급해온 덕수리 불미공예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덕수리는 덕수리 불미공예에 알맞은 진흙과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뛰어난 기술력으로 양질의 제품을 만들었다.

©보습뎅이에 쇳물 붓기

제주도에 솥을 제작하는 불미가 처음 들어왔다고 알려진 곳은 한경면 낙천리이다. 불미의 고향답게 ‘아홉굿마을’이란 표지석을 세워놓고 있다. 불미 일로 흙을 파낸 자리엔 물이 고여 연못이 되면 그 물을 굿물이라고 하는데, 낙천리 새미왓물이 바로 굿물이다. 1660년경 전라도에서 솥 제조의 장인인 송가금이 낙천리 새미왓 동네로 이주해왔다. 이곳에는 덕수리 불미공예를 하는 데 적절한 흙이 있었다. 송가금 가족이 벌인 불미 일이 주변 동네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수, 청수, 저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이에 매달렸다. 수백 년 동안 파헤쳐 만들어진 굿물들이 당시 열풍을 말해준다. 비슷한 시기에 송가금의 둘째 아들 송일봉이 가족을 이끌고 지금의 안덕면 덕수리로 옮겨왔다. 산방산 자락에 양질의 흙이 있었다. 덕수리에도 굿물이 생겨났다. 한때 새당이라 불렸던 옛 덕수마을에 불미 마당이 열렸다. 그리고 새당보섭이라는 명품을 만들어냈다. 덕수리에 사는 양씨, 임씨, 박씨, 송씨들이 지금의 구좌읍 덕천리로 옮겨가 유명한 ‘거멀솥’을 만들어냈다.

©덕수리 불미공예

지난 80년대 최후의 보습을 만들기까지 덕수마을은 제주도 덕수리 불미공예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런데 무쇠솥은 품질이 좋았으나 알루미늄 솥이나 양은냄비의 싼 값과 편리성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새당보섭으로 이름을 떨쳤던 쟁기용 보습은 경운기가 대신 밭을 갈면서 찾는 사람이 없어졌다. 이제 제주도의 전통 덕수리 불미공예는 재현행사가 아니면 볼 수 없게 되었다.

안덕면 덕수리 불미공예는 1986년 4월 10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기능보유자 고(故) 송영화를 중심으로 1991년부터 매년 덕수리 전통민속재현행사를 열어 덕수리 불미공예를 재현해 오고 있다. 2008년 송영화가 타계함에 따라 윤문수가 새로운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17년 윤문수가 건강상 이유로 명예보유자로 전환되면서 잠시 전승의 중심체인 보유자가 공석이었다. 이후 6년 만인 2023년 덕수리마을회가 덕수리 불미공예 보유단체로 인정되면서 단체 지정이라는 새로운 전승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 덕수리마을회 송태환 이장의 주도하에 송기철 팀장과 7명의 젊은 전수자들이 덕수리 불미공예의 전승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습뎅이

덕수리 불미공예는 쇳물을 녹여서 제품을 생산하는 활동이어서 전문적인 기능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이 주물의 질을 결정한다. 덕수리 불미공예의 구성원으로는 불미 마당의 원주인이자 물주인 원대장 1인, 불미마당을 총괄하는 알대장 1인, 둑(용광로)에 쇠를 넣어 녹이는 일을 진두하는 둑대장 1인, 바슴에 질먹을 바르는 질먹대장 1인, 쇳물을 받아다 바슴 구멍에 부어 넣는 젯대장 3인, 불미의 널판을 밟아 바람을 일으키는 불미패 4~6명, 그외 잡일꾼 4명 등 15명에서 20명 내외의 인원이 동원된다. 대장들 각자가 자신이 지닌 기능을 과정마다 적절히 발휘할 때 훌륭한 제품이 완성될 수 있다. 무쇠솥과 쟁기의 보습을 만드는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쇠솥과 쟁기의 보습을 만드는 과정

  1. 진흙을 파다 흙이김질을 한다. 이때 보리 까끄라기를 섞어 밟으면서 반죽한다.
  2. 이김질한 흙으로 틀(바슴, 뎅이)을 만든다. 솥은 바슴, 보습은 뎅이라고 한다.
  3. 용광로에 해당하는 둑 쌓기를 한다. 둑은 알둑, 샛둑, 웃둑으로 구성된다.
  4. 원대장은 참봉제를 지낸다. 참봉은 불미 수호신으로 도깨비신이라 한다.
  5. 둑에 불을 넣고 무쇠를 녹인다. 둑에 코크스를 넣어 불 세기를 조절한다.
  6. 풀무 발판을 밟아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때 디딤불미노래가 불린다.
  7. 쇳물이 나오면 쇳물을 받아다 바슴 구멍에 부어 넣는다.
  8. 쇳물이 식어 굳으면 바슴을 망치로 깨어 완성품을 꺼낸다.

덕수리 불미공예에서 불미질(풀무질)은 바람을 일으켜 무쇠를 녹인다는 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둑안으로 바람을 집어넣어 온도를 1500°C까지 올려야 무쇠가 녹아내리기 때문에 바람을 집어넣는 일, 즉 풀무질은 한시도 멈출 수 없다. 디딤불미는 한쪽에 3명씩 양쪽에 6명이 한 팀이 되어 발판을 한쪽 발로 밟는데, 두 팀이 교대로 힘껏 발판을 밟아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때 힘들고 지친 일꾼들에게 흥을 돋우고 동작을 일치시키기 위해 불미노래를 부른다. 불미노래는 한 사람이 “불미나 불엉 담배나 먹자”처럼 선소리를 하면 발판을 밟는 일꾼들이 “아하아야 에헤에요”와 같은 후렴을 받는 선후창 방식으로 불린다.

©오시장테에 쇳물 받기

불미는 크게 손불미와 골불미(발불미)로 나뉜다. 손불미는 불미의 손잡이를 밀고 당기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인데 토불미(청탁불미), 똑딱불미라고도 한다. 골불미(발불미)는 땅바닥에 장방형으로 골을 파서 중간에 굴대를 박고 그 위에 골에 맞는 널빤지를 걸쳐 놓아 양쪽에 선 사람들이 발로 발판을 밟으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디딤불미, 발판불미라고 한다. 덕수리 불미공예와 관련된 불미는 바로 디딤불미(발판불미)가 주를 이룬다. 따라서 이때 부르는 노래는 디딤불미노래인 셈이다. 디딤불미노래는 무쇠를 녹이기 위해 바람을 세게 불어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발판을 세차게 밟고 디디면서 불리는 만큼 손불미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보다 가락이 빠르고 흥겹다. 제주의 모든 노동요가 그렇듯 불미노래 역시 고된 작업의 실상과 작업에 참여한 일꾼을 독려하거나 신세 한탄을 하는 사설이 주를 이룬다.

다음은 소리꾼 홍기화의 선소리에 맞춰 강원호, 송재인, 홍태규가 후렴을 받은 디딤불미노래이다.

덕수리 불미공예는 예로부터 본토와 교역이 불편했기 때문에 생필품이나 농기구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했던 제주도민들에게 솥, 보습, 고소리 등을 제작하여 공급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무형유산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