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상소리

‘행상소리’는 행상을 행상을 장지까지 메고 가면서 부르는 노래인 만큼 빈몸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허망함과 삶의 허무감이 잘 드러나 있는 노래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삶을 지속해 왔던 제주 사람들에게 있어 마을 사람들은 곧 궨당(친척의 제주어)이었다. 한 마을에 성가 친척, 외가 친척 등이 공존했고, 명절이나 혼례, 상례때 서로 상부상조하는 등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궨당 공동체가 곧 마을 공동체인 제주 사람들의 특별한 공동체 의식은 제주민요에도 잘 드러난다. 특히 제주의 장례의식요인 영장소리에 잘 드러난다.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의식요인 제주도 영장소리는 마을 공동체 곧 궨당 공동체가 상을 치르는 가운데 불렸던 노래이다. 죽음은 사람의 일생에서 중요한 통과의례의 하나다. 산 사람들이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에서 불렀던 영장소리는 노래를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했던 노래라 할 수 있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접군, 골군, 유대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서로 부조를 하여 장례를 치른다. 그때 불렀던 제주도 영장소리는 장례 절차 따라 여러 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상두꾼들이 상여를 장지까지 운상하면서 부르는 행상소리, 장지에서 봉분에 쌓을 흙을 파면서 부르는 진토굿파는소리, 봉분에 흙을 쌓은 후 달굿대로 봉분을 다지며 부르는 달구소리 등이 있다. 동부 지역 일부 마을에서는 장례식 전날 꽃상여를 메고 마을을 돌며 꽃염불소리를 부르기도 한다.

제주도 영장소리의 사설 내용을 살펴보면 장례절차와 관련된 내용, 무덤 자리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내용, 죽음과 이별에서 일어나는 인생무상의 정서를 노래하는 등 다양하다. 죽음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한번 해보게 할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기에 그 의미가 크다. 제주도 영장소리는 사설이나 가락이 공통적인 요소를 간직하면서도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다. 전통적인 장례의식이 사라진 요즘도 구좌읍 종달리, 우도면 오봉리, 표선면 성읍리, 제주시 이호동, 회천동, 한림읍 월림리 등 일부 마을에서 전승되는 노래가 채록되어 있다. 장례의식의 간소화와 장례식장의 등장 등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제주도 영장소리 또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는 2017년 8월 24일 장례에서 불렸던 고유의 지역성을 간직하고 있는 의식요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영장소리로 지정했다.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영장소리 보유자는 송순원이다. 송순원은 조상 대대로 14대째 표선면 성읍리에서 살고 있는 성읍리 역사의 산증인이자 소리꾼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밭을 갈기 시작했고, 17세 때부터 달구지를 몰았으며, 노동하는 현장에서 할아버지 송유환의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집안 대대로 소리가 좋기로 널리 알려졌던 송순원의 집안은 특히 아버지 송남혁이 소리를 잘했는데, 14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소리를 배우고 익혔다. 그 덕분에 영장소리 외에도 밧가는소리, 밧ᄇᆞᆯ리는소리, 홍애기, 아웨기, 마당질소리, 촐비는소리, 흑질ᄒᆞ는소리, 성주소리, 말모는소리 등을 비롯하여 성읍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대부분의 노동요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송순원이 본격적으로 영장소리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송남혁이 장지를 다니지 않게 된 15세부터이다. 아버지 대신 상례에 참여하여 상여소리의 선소리꾼이 되어 소리를 한 덕분에 염불소리, 행상소리, 진토굿파는소리, 달구소리로 이어지는 의식요를 온전히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영장소리를 전수받은 송순원은 지금도 상주의 청이 들어오면 장례에 참여하여 영장소리를 부르고 있다.

8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제주도 영장소리를 전수하기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2019년부터는 매주 화요일마다 성읍민속마을 무형유산 전수관에서 전승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마을 출신의 홍명옥, 김석준 등이 전수자가 되어 제주도 영장소리를 배우고 익히며 그 맥을 잇고 있다.

성읍리에서 이루어지는 장례절차와 그에 따른 민요를 차례로 살펴본다. 먼저 장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망자의 혼을 불러 황천길을 떠남을 알리고, 또한 망자가 집을 떠남에 하직 인사를 하는 홀기를 읽는다. “영이기가 왕즉유택 재진결례 영결종천”, 조축을 고하고 자! 하고 외치면서 상여꾼들이 상여를 둘러메면 염불소리를 부르기 시작한다. 마을 장정들이 상두꾼이 되어 상여를 메고 나서면 선소리꾼이 소리를 시작하고, 선소리에 맞추어 상두꾼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선소리를 받아서 부르거나 후렴을 받는다. 염불소리는 사설 없이 “어어~오오~익”과 같이 여음만을 사용하여 부른다. 상여에 매단 종이 울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마을의 가름을 벗어날 때까지 부른다. 선소리꾼이 “어~어~ 오~익”과 같이 선소리를 하면 상두꾼들이 동일한 소리로 뒷소리를 받는다. 마을에 따라서는 이 소리를 영귀소리라 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염불소리를 한 다음 행상소리를 하기도 하고, 행상소리 자체를 염불소리처럼 부르는 경우도 있다.

표선면 성읍 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영장소리는 아래와 같다.


염불소리

(선)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후)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선)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후)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선)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후)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선)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후)어어어~어어어~ 오오오~~익

이 노래는 보유자인 송순원이 선소리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 여럿이 따라 부르는 선후창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보유자 송순원의 말에 의하면 이 소리는 선창, 후창의 소리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즉 소리꾼이 선소리를 부르면 여럿이 그대로 그 소리를 받는 방식이다. 또한 이 노래는 마을 안에서만 부르는데,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상두꾼들이 장난을 치지않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 운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거리넝창

염불소리를 하며 상여가 마을 밖을 벗어나면 장지까지 운상하면서는 행상소리를 부른다. 성읍 마을에는 어거리넝창과 행상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사실 상여를 먼 장지까지 운상하는 일을 힘든 일이다. 대개는 상여를 메고 산중으로 올라가야 하고, 때로는 장지까지 수십 리를 가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지는 성읍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주산인데, 이처럼 가까운 곳으로 운상할 때는 행상소리로 충분하다. 하지만 장지가 좌보미오름같이 먼 거리일 때는 상여를 4번 정도 쉬어가야 했다. 이때는 어거리넝창을 부르다가 장지가 가까워지면 빠르고 흥겨운 행상소리를 한다. 상여를 메는 데는 상두꾼들이 강한 체력이 요구됨은 물론 상여를 바꿔 멜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까닭에 상여를 메는 일의 힘듦과 지루함을 해소하고 상두꾼들과 마을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고 힘을 내라고 부추길 강력한 노래가 필요했다. 성읍 마을에서는 어거리넝창과 행상소리가 온전히 전승되고 있다.

(선)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후)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가세가세 어서가세 이수를 건너 병로가세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오널오널 오널이여 매일 장사가 오널일세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우리어멍 날낳으신 날은 무신 날에 날낳던고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남난 날에 날 낳았으면 남과 같이 살았을 것을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어허널~ 어허널~ 어거리넝창 어허널

달구소리(멀구소리)

송순원의 노래 인식은 달구소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달구소리는 사람이 죽어 봉분을 쌓을 때 봉분의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즉 달구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지역에 따라서 펭토소리, 멀구소리라고도 한다. 봉분을 만들면서 보통 세 번 정도 흙을 다지는데, 달굿대 혹은 상여의 ᄆᆞᆯ캣낭을 이용한다.

선소리꾼이 봉분의 한 가운데 서서 소리를 메기면 달굿대를 든 상두꾼들이 “어허 달구야”, 또는 “어허 멀구야”와 같은 후렴을 받으며 흙을 다진다. 성읍리에서는 집터 다지는 달구소리와 구별하여 봉분을 다지면서 부르는 소리를 멀구소리라고 한다. 속설에 따르면 저승으로 멀리 떠는것이 섭섭하다고 하여 “어허 멀구”라고 부른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멀구소리는 더욱 슬프고도 애잔게 들린다.

자~ 적군님네 들어섭서, 달구지게. -예

어허 멀구야
어허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우럭삼춘 들어나봅서
어허 멀구야

볼락조캐 ᄀᆞᆯ으라 듣져
어허 멀구야

간밤에 꿈을 보난
어허 멀구야

어허어 멀구야
어허어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쒜공젱이에 걸려 붸고
어허 멀구야

대구덕에 누워도 붸고
어허 멀구야

칼 맛도 보아붸고
어허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목탄불도 초아붸고
어허 멀구야

젯상우에 앉아붸고
어허 멀구야
술 석잔도 받아붸고
어허 멀구야

절 삼배로 받아붸고
어허 멀구야

니껍이랑 물지도 맙서
어허 멀구야

어허 멀구야
어허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아 허어~~ 멀구야
아이고 적군님덜 오널 달구지젠 ᄒᆞ난 ᄆᆞᆫ 착 속앗수다. 그만저만 헙주뭐. -예.

송순원이 부르는 달구소리는 우럭삼촌 사설이 삽입된 것이 특징이다. 볼락이란 바닷고기가 우럭에게 간밤에 꿈을 꾼 이야기를 하는 꿈 해몽 내용으로 죽음을 예고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의 사설은 어부들이 고기를 낚으면서 부르는 소리를 송순원이 달구소리에 차용한 것으로 봉분을 천년만년 살을 집이라고 하거나 좌우 사방을 둘러보니 명당자리가 분명하다라는 등 다른 마을에서 불리는 사설과 다른 것이 특이하다. 궨당 공동체가 마을 공동체이고 마을 공동체가 곧 의례공동체였던 제주사회에서 제주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오롯이 반영한 구술문화인 제주민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장례의식과 더불어 제주도 영장소리도 또한 예전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망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공동으로 의례를 행하는 중요한 의식에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경건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왔던 제주도 영장소리는 후세에 전승 보전되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무형유산이다.